영등포 을구 범 재야후보|서류탈취 누가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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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등포 을구 재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재야의「법 민주단일후보」고영구 변호사 측이 안기부가 경찰을 동원, 자신들의 선거관련기밀서류를 훔쳐 간 뒤 3O0분만에 되돌려 줬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고 후보측은 서류 달 취 사건이『범 민주단일후보가 광범한 지지를 얻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민정당 측이 안기부를 시켜 저지른 일』이라며 31일 자체진상조사단을 발족하고 민정당과 안기부장·치안본부장에게 진상규명 촉구공문을 보내는 한편 해명이 없을 경우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이번 사건은 영등포 을구 선거의 최대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다.
◇발단=28일 오후8시20분쯤 김민석씨(27·전 서울대 총 학생 장)등 고 후보측 선거참모들이 23일부터 고 후보의 홍보·득표전략과 선거계획 등에 대한 최종계획안인「범 민주후보필승전략」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서울 신길3동 신일장 여관에 서울 노량진경찰서 김수만 대공과장 등 사복경찰 7∼8명과 전경 10여명이 들이닥쳐 이 여관 101호와 105호를 수색했다.
경찰은 당시 105호에 있던 고진화씨(27·전 성대 총 학생 장)에게『다른 방으로 가자』며 김민석씨와 자원봉사자 박민성씨(25)가 있던 101호실 쪽으로 끌고 갔고 이때 계단에서 마주친 30대 남자 3명이 경찰에『안기부』라고 신원을 밝힌 뒤 경찰 대신 101호실로 들어가 김씨 등에게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30대 남자들은 김씨로부터 전화번호수첩을 압수한 뒤 김씨 등 이『선거운동원을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거세게 항의하며 서류가 있던 105호로 몰려가는 사이 슬며시 사라졌고 김씨 등 이 105호에 갔을 때는 이미「필승전략」사본 1부가 없어진 뒤였다고 주장했다.
당황한 운동원들이 여관 앞에서 노량진서 대공2계장 등 남아 있던 경찰 2명을 붙잡고『서류를 내 놓으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중 오후9시10분쯤 30대 남자 1명이 방에 남아 있던 박민성씨에게『누가 전해 주라고 했다』며 서류와 수첩이 든 회색봉투를 건네주고 황급히 여관뒷문으로 빠져나갔고 박씨가 뒤쫓아가자 다른 4명과 함께 서울 1르3444 르망 승용차를 타고 사라졌다는 것이 고 후보측의 주장이다.
차적 조회결과 운동원들이 목격했다는 문제의 차는 안기부 소유임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노량진서 김수만 대공과장(52)은『오후8시쯤 신원을 안 밝힌 여자가 대공 2계로 전화를 걸어 신일장 여관에 수배학생들로 보이는 청년 10여명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임검을 나가 확인했을 뿐』이라며』서류는 가져간 적이 없고 안기부직원이 그 자리에 왔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의문점=우선 관할 노량진 서에서 23일부터 고 후보 선거사무실 길 건너편 여관에 참모들이 방을 잡고 운동원들이 계속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부정선거시비로 재선거를 하는 바람에 불법 선거운동 사례수집을 위해서라도 관할서가 후보들의 활동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실정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또『수상한 청년 10여명이 있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고가 접수된 오후8시쯤에는 김민석씨 등 3명만이 여관에서 쉬고 있었고 외부인사들이 들락거리지 않았다는 운동원들의 주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이 101호와 105호에서 각각 임 검을 실시하지 않고 고진화씨를 서류가 있던 105호에서 101호로 데리고 간 뒤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수색한 사실도 석연 찬다.
더욱이 운동원들이 목격했다는 르망 승용차가 차적 조회결과 안기부 주소지와 동일한 곳으로 드러난 데 대해 안기부와 경찰은 아무런 해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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