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지 않는「손님」임 양 처리 북한 고심|통일 각 농성… 곤혹스런 평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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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양과 임 양의 보호를 내세우며 북한에 들어간 문규현 신부 등 이 판문점 통과를 요구하며 판문점북한측 지역인 통일 각에서 31일 현재 5일째 농성중이다.
정부는 그동안 유엔사의 허가 없이 북한측이 임 양의 판문점 통과를 강행한다면 이는 휴전협정을 고의로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중대한 도발행위라고 경고 해 왔다.
북한은 처음부터 평양축전을 계기로 대내외적으로 자신들을 평화통일의 신봉자로, 남한과 주한미군을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수단으로 임 양의 판문점 행을 추진 해 왔다.
따라서 북한은 휴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하면서까지 임 양을 판문점으로 내려보내는 모험을 함으로써 애써 쌓았다고 믿고 있는 대외이미지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는 판단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남쪽의 동조세력을 끌어 모을 수 있고 국제적으로 시선을 끌수 있는 방법으로 임 양의 판문점 농성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임 양 등의 농성은 당초부터 예상됐던 북한측의「예정된 선전 극」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노린바 대로 임 양이 지난달 30일 입북했을 때부터 우리 정부로서는 큰 부담을 안은 게 사실이었다.
문 목사 방북에 이어 터진 임 양의 사건으로 내막이야 어떻든 북한 쪽에 큰 선전거리를 제공하게 되었고 또 우리 내부적으로 이와 관련된 시위가 잇따르고 천주교정의 구현사제단이 뒤늦게 문 신부까지 파견하는 등 잡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 쪽의 이러한 자극은 정부로 하여금 북한과 대결·경쟁외교를 지양하고 동반자관계로 나아가겠다는 7·7선언을 사실상 보류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7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4차례의 남-북 회담을 모두 무기연기 시키고 8월2일 예정의 남-북 적십자 실무대표접촉을 미룬 것도 바로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불쾌감의 표시다.
정부당국자들은 이제 『우리도 당할 만큼 당했으니 돌려 줄 차례』라는데 별 이견이 없고, 어느 일면 여건이 그런 목으로 조성되어 가고 있다.
한 예로 임 양의 농성으로 어수선한 와중에 중국 군 소령부부가 북한측 경비망을 뚫고 우리 쪽으로 망명한 것이 수세에 몰려 있던 우리입장을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원 관계자들도『임 양 문제로 더 이상 우리측이 괴로울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제부터는 북한측이 임 양의 처리문제로 곤욕을 겪을 차례라는 뜻이다.
임 양은 평양에 도착하면서부터『목숨을 걸고라도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겠다』고 거듭 판문점 귀환을 내세워 왔다. 이것은 북한이 시켜서 한 말이라 기보다는 극좌 모험주의 적 학생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평양축전 참가보다 오히려 판문점 통과를 지상목표로 내세워 온 임 양을 북한측이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조짐은 임 양이 판문점 통과 일로 잡았던 지난27일 외신기자들과 우리측 관계자들에 의해 목격됐다.
외신은 임 양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에 모인 군중들에게 연설하기 직전 일단의 북한사람들로부터 접근공세를 받았으며 임 양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듯 눈물을 흘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정부관계자들은 임 양이 판문점에 나타나면서부터 북한측에서 고의로 남쪽으로 향하는 길을 사람들로 꽉 메워 임 양의 남 행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또 문 신부의 뒤늦은 가세도 북한으로서는 달 감지 않은 듯하다. 문 신부의 입북사실을 북한측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문 신부의 합세로 북한측이 임 양을 설득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결국 임 양을 제3국을 경유해 일본을 통해 귀국하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문익환 목사 방북이후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 임 양의 귀국에 중국경유를 꺼려하며 허가치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주일의 농성이라는 쇼를 끝내고 임 양은 오는 8월5일을 넘어서야 판문점이 아닌 우회로를 통해 귀환할 것으로 보인다. 귀환코스는 입북 때의 역코스인 동구∼일본경유가 될 가능성이 많다.
북한측은 제3국을 통해 임 양을 귀환시키면서 또 한차례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벌일 것으로 보이며 임 양의 귀환에 맞춰 국내에서도 대대적인 시위가 예상돼 임 양 사건의 충격이 당분간은 더 계속될 것 같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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