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순간 "꽝"…아수라 불바다|KAL기 참사 생존자 2명 본사에 전화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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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생전 처음 본 끔찍한 현장이었습니다. 살아난 게 꿈만 같습니다.』
KAL기 추락직후 불타는 동체에서 탈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동아건설 김갑성씨(41·서무과장)와 이태룡씨(26·전산부)는 28일 오전 트리폴리 동아건설 사무소에서 본사와의 국제전화를 통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나.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가는 근로자 60명의 인솔 책임자로 이씨와 함께 탑승했었다.
-사고 경위는.
▲비행기가 트리폴리 공항 도착 직전 일어난 것으로 현지 시간 오전 7시9분쯤 『곧 착륙하니 안전벨트를 다시 확인하라』는 여승무원의 안내 방송을 들은 3, 4분쯤 뒤였다. 비행기가 하강을 하는 듯 하더니 갑자기 『꽝-.쿠르릉』하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듯 10여 초 동안 요동을 치며 지그재그로 달렸으며 어디엔가 크게 충돌하는 소리, 충격과 함께 잠깐 정신을 잃었었다.
-공항이었나.
▲활주로를 5백m 이상 벗어난 곳이었다. 활주로 근방의 2층 가옥을 들이받고 과수원으로 퉁겨 나가면서 곳곳에서 불이 붙은 것으로 기억된다.
-탈출은.
▲『불이야』 소리와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을 들으며 깨어 보니 왼쪽 앞좌석 부분에 불이 붙어 있었고 조종석 부분이 박살나 없어진 상태였다.
안전벨트를 풀고 이씨와 함께 비행기 앞부분 오른쪽에 뚫린 구멍을 통해 기체 밖으로 뛰어 내려와 정신없이 달렸다.
-다른 승객들은.
▲짙은 안개로 2, 3m 앞도 안 보이는 가운데 동체 곳곳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다. 한 승무원이 『함께 사람을 구조하자』고 소리쳐 비행기로 접근 중 곧 동체 중간부분에서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와 불길이 치솟으며 동체가 두 동강 났다.
접근을 못한 채 땅바닥에 엎드려 보니 승객들이 계속 밖으로 뛰어 내리는 모습이 보였고 기체 뒷부분은 곧 불바다가 된 채 여기저기서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끔찍한 아비규환의 현장이 됐다.
-구조 작업은.
▲5분쯤 지나 앰뷸런스와 소방차 수십 대가 안개를 뚫고 달려와 진화 작업과 함께 들것으로 부상자들을 정신없이 실어 날랐다. 비행기 앞부분 1등 석 쪽에 탄 승객들은 안전하거나 부상정도가 가벼웠으나 중간 뒷부분 승객들은 대부분 불타 죽거나 중상을 입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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