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아이셋맞벌이] 애들 울고불고 … 덕분에 조용해진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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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남편은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온다. 그리고 또 가끔은 오늘처럼 집과 회사의 중간 지점인 합정역에서도 기다린다. 30분 후에 만나기로 해서 퇴근을 하려고 하니 아니 웬걸.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팀장님 이하 누구도 퇴근할 분위기가 아니다. 혼자 퇴근하기 민망해 눈치만 살피고 있다가 "올림픽대로에 들어섰으니 금방 간다"는 남편의 친절한(?) 전화를 받고서야 "나도 시청역이라 금방 간다"는 거짓말을 하며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왔다. 한데 지하철을 타서 두 정거장도 가기 전에 남편은 벌써 도착을 했다는 게 아닌가. 늘 "약속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남편인지라 마음이 급해졌다.

20분이나 늦게 도착하니 상황은 예상대로. 큰아이는 소변이 마렵다며 길에 서 있고, 둘째는 자기도 내리겠다고 문을 연 상태다. 남편은 카시트에서 내리겠다며 우는 막내를 달래느냐 정신이 없다. 급한 마음에 길거리에서 아이 소변을 누이는 무식한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남들이 보면 나를 뭐라 할까? 비가 와야 할 텐데…' 등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어쩌랴. 지금 상황에선 이 방법이 최선인 듯한 것을.

눈치를 보며 차에 타니 화가 난 남편은 "왜 늦었느냐?" "너는 매일 그런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는 거 모르느냐?" 등 뻔한 잔소리를 또 시작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니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막내가 경기하듯 울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큰아이는 "수퍼에 가자"며 조르고, 둘째는 창문을 더 열어달라며 떼를 쓴다. 좁은 차안에서 그야말로 정신없는 상황. 남편까지 화가 나 있으니 정말 빨리 집에 가서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 정신없는 상황이 위기모면의 기회가 될 줄이야. 아이들을 달래는 동안 남편이 자기가 화가 났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오늘처럼 아이가 있어서 싸우고, 아이가 있어서 부부 싸움도 오래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늘처럼 아이들이 울어서 고마운 날은 없었다.

박미순 레몬트리 기자

◆ 결혼 8년차, 그래도 싸우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건 …

① "나는 장모님께 잘할 테니, 너는 시어머니께 잘해."

결혼하면서 남편이 부탁한 말이다. 고맙게도 남편은 '진심일까?' 의심될 정도로 나보다 더 우리 가족들을 챙기고, 잘 지내줬다. 그런 모습을 보니 시댁에 가서 처음엔 쑥스럽고 적응되지 않았는데, '나도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부부 사이에서도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는 듯하다.

② 한 사람만 참으면 싸움이 길지 않더라

아이를 낳기 전에는 싸울 일이 없었던, 나름 건전했던 우리 부부. 성격이 달라 화를 내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한 사람이 화를 내도 다른 사람은 그 타이밍에 화를 내지 않았던 것.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싸우는 일이 많아졌지만 싸움이 반나절을 넘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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