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을 기다리는 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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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7일 아침 서울 평창동 임수경 양의 집―.
한달 전 「남한 대학생의 밀입북」이라는 엄청난 충격을 던지며 숱한 여론과 뉴스의 초점이 모아진 언덕빼기 2층 양옥은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어느 때보다 적막에 잠겼다.
초조함을 못 이겨 전날 밤 집에 온 수경 양의 고모 등 친척 4명만이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며 초조히 집을 지키고 있을 뿐 『딸의 모습을 보려 매일 마감 시간까지 TV뉴스를 봐 왔다』는 수척한 모습의 어머니 김정은씨 (53)는 한달째 계속해 온 새벽 미사를 위해 부근 세검동 성당으로 나갔다.
『자식에 대한 가르침이 부족했던 용서를 빈다』며 애끓는 부정의 대 국민 사과 편지를 발표한 아버지 임판호씨 (55)도 새벽 미사에 함께 갔다가 무거운 발길로 출근했다.
언니 윤경씨가 전날 안기부 직원에 연행 돼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
같은 시간 수경 양의 환영 집회가 열릴 예정인 서울 시내 각 대학 주변과 판문점으로 통하는 통일로에는 이미 2만여 경찰의 경비가 펼쳐있다.
판문점까지 환영단을 파견하고 환영 대회와 함께 대대적 가두 시위를 벌이기로 한 전대협 대학생들의 열기는 곧 경찰과 대규모 충돌을 벌일 듯 폭풍전야.
수경 양의 빈방에 성모상을 놓고 매일 기도해 온 어머니는 『딸이 돌아온다』는 이날 어디서 애타는 모정을 혼자 삼키고 있는 듯 귀가 시간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고, 수경 양 집 앞에서는 『부모의 착잡한 표정이 보기에 너무 안쓰럽다』는 동네 할머니가 『불효막심한 딸자식』 이라며 한숨을 쉬고 지나갔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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