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고문 다룬 영화 제작 어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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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이태씨의 자전 소설 『남부군』이 영화화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5공 치하 경찰의 공안 사건 피의자에 대한 고문 행태를 다룰 예정이던 『붉은 방』도 영화사 측이 제작을 무기한 보류했다.
영화계는 두 영화의 제작 차질이 최근의 경색된 시국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앞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나 계층간 갈등 등을 담아낼 사회성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공연 윤리 위원회는 노사 문제를 다룬 『구로 아리랑』을 21곳 삭제한데 이어 심의 기준 강화를 시사하는 공한을 각 영화사 앞으로 보냈으며 문공부는 「체제 수호」 등을 골자로 영화 법 등 시행 규칙을 고치겠다고 입법 예고했었다.
지난 4월 지리산 계곡에서 크랭크인된 『남부군』은 관계 당국으로부터 전쟁 영화에서 필수적인 장비 등의 도움을 얻지 못해 리얼리티를 못 살리고 있다.
제작사인 남 프로덕션은 수많은 등장 인물이나 군복 등은 그런 대로 조달이 가능 하지만 총기류 등 장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기 줄에 화약을 연결한 나무 총을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어 근접 촬영은 엄두도 못내 박진감은 커녕 실감조차 못 낸다는 것.
주인공 이태 역을 맡은 안성기씨는 『한국 영화의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장비도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좋은 영화가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감독 정지영씨는 『빨치산의 활동을 사실 그대로 재현하면서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인간들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휴머니즘의 회복을 그리자는 게 이 영화의 연출 의도』라고 밝혔다.
정씨는 『빨치산들의 비극적 삶과 죽음에 동정심이 일어난 관객들이 결국 이념의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게 당국의 우려인 모양인데 그건 지나친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임철우씨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하는 『붉은 방』은 운동권 수배 인물을 숨겨준 혐의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한 회사원을 등장시켜 80년대의 정치 폭력을 고발하려는 작품이다.
모가드코리아가 지난 2월 문공부에 제작 신고를 한 이 영화는 당시 「현행 영화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제작하라」는 공문과 함께 신고 필증이 나온 것을 시발로 관계 당국으로부터 이런저런 무언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가드코리아 측은 총 2억5천여만원의 제작 예산 중 이미 1억여원을 배역 선정 장소 헌팅 등에 썼다고 밝히고 대본 등을 좀더 검토한 뒤 때가 오면 촬영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장선우 감독도 『소설로 발표 돼 베스트셀러 될 만큼 다 알려진 내용을 영화라고 해서 제약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다만 경찰의 고민 등도 폭넓게 수용하는 등의 문제는 따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씨는 특히 『이번 경우가 표현의 자유 등에 나쁜 영향을 끼쳐서는 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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