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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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도시의 가정주부 33명이 은밀하게 사발통문을 보낸다. 모월 모시 지정된 장소로 모여라. 전갈 받은 주부들은 쌀과 부식을 챙겨 한날 한시 지정된 장소로 모여 감옥같이 사라졌다.
아내를 찾기 위해 남편들이 수소문하고 마침내 경찰까지 동원되었다.
깊은 계곡에서 「새 왕국 새 삶」을 찾기 의한 기도회에 60여명의 남녀가 참석해 27일간의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3인 1조로 된 텐트 속에서 이들 「미륵을 믿는 민족종교단체」 의 신도들은 5시간 잠 자는 일 외에는 50분 기도, 10분 휴식으로 하루종일 기도에 몰입한다.현장에서 알려온 취재기자의 목격기다.
의젓한 가정과 사회적 신분도 높은 집안의 주부도 끼어있는 이 모임이 그토록 외곬으로 빠져드는 기도의 의미란 무엇인가?
종교의 무속화는 기도의 남용에서 비롯된다. 기도의 본래적 의미는 자기성찰을 통한 구원에 있다. 자신의 일상과 주변 관계 속에서 잘못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자기 변신을 위해 노력하는 「거듭 태어남」이 기도의 참된 자세다. 그 결과가 구원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무속적 기도모임은 기도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인상이다. 기도를 통해 재화를 획득하고 아들의 입학과 출세를 빌며 부귀영화를 두 손 모아 빌고 소리높여 하늘에 그 기도가 닿도록 외쳐댄다. 자신의 노력과 성찰없이 어느 날 갑자기 도통군자가 되어 신력을 휘두르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때 기도는 무속으로 떨어진다.
신흥 종교단체가 그칠 사이 없이 계속 생겨나는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척박한 사회풍토에 보다 큰 이유가 있다. 부부간의 소외의식, 자식과의 단절, 이웃간의 불화가 우리 주부들을 괴롭힌다.
겉으로는 유복하고 정상적인 모양을 갖춘 가정이지만 절해고도 속의 외로움을 뼛 속 깊이 새기는 가정주부가 늘어난다. 고독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적 안주처로서 신통한 기도회를 찾아 나설 때 무속적 신흥종교가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가정주부들의 집단가출을 탓하기 앞서 사랑과 평화의 따스함이 스미지 않는 우리사회의 각박한 현실을 먼저 개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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