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 TV드라마의 추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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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송, 특히 텔레비전 방송은 그 신속한 확산성과 제한없는 침투성으로 해서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어느 매체보다 막강하고 심대하다. 그런 방송이 최근 일부 프로그램에서 지나친 폭력과 퇴폐·부도덕 등이 문제가 되고 있어 방송위원회는 꼬일 자체 심의를 강화하도록 각 방송사에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요즈음 특히 국민의 우려와 개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방송프로그램은 TV의 드라마·오락프로다. 십야의 환락가 밤무대를 뺨칠 만큼 현란하고 선정적인 쇼, 패륜과 부도덕이 판치는 드라마, 과소비를 충동질하는 광고 등이 특히 비등한 여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자율·민주화 흐름에 따라 방송도 권위주의시대의 구각을 벗어나 보도·교양프로 면에서는 괄목할만한 성장과 개선이 이뤄졌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오락·드라마 프로에서만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자율화가 태동단계에 들어가던 작년 2월 방영된 미니시리즈 드라마 『불새』를 시발로 『상처』, 현재 방영중인 『사랑의 굴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TV드라마들이 우리 사회의 전통적 윤리관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장면들을 담고 있다는 지탄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자면 방송의 자율화가 마치 제작자가 프로그램을 제멋대로 만들어도 된다는 무절제와 방종의 허용쯤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
이처럼 TV오락프로의 폭력·선정·반윤리가 판을 치는 것은 제작자들의 윤리의식 부재와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제작자의 양식과 의식의 재정립을 바라고 싶지만 그런 소양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프로그램의 사전심의의 철저한 객관화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잘못된 프로가 이미 방영된 다음에 「경고」「주의」「사과」니 해본 들 다음 프로를 위한 주의환기의 뜻은 있을 망정 방영된 프로가 가한 해악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객관적 사전심의의 엄격한 행사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과정에까지 심의기능이 작용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TV 광고도 마찬가지다. 지난 4개월동안 방송위가 심의한 TV 광고 중 25%가 표현이 부적절하고, 10%는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내용을 보면 「허위·과장」「건전한 정서·품위손상」등으로 돼있다.
심의에 통과돼 방영되고 있는 광고조차도 선정적이고 소비조장적인 인상을 준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여론이다.
시청률 경쟁에 의한 방송의 저질화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상업방송을 불허하는 이른바 공영방송체제에서 상업방송시절을 무색케 하는 퇴폐와 부도덕을 일삼아서야 될 말인가.
TV는 극장과 달라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안방을 파고들어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내는 매체이기 때문에 국민의 전통적 윤리관과 2세들의 사회관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위험이 높다. 온 가족이 함께 보아도 낯뜨겁지 않는 건전하고 흐뭇한 오락프로를 위해 관계자들의 각성과 노력을 바란다. 농촌드라마 『전원일기』가 벌써 수 년째 『가장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로 꼽히는 현상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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