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감정 거리먼 5공 심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18일 징역 10월의 실형이 선고됨으로써 5공 비리 관련 주요공직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
지난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비리 관련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기 때문에 이로써 5공비리에 대한 사법심판은 일단 끝난 셈이다.
현재 1심 재판이 남아있는 사람은 김종호 전 건설부 장관 뿐으로 김 피고인은 구속 47일만에 당뇨병 등 신변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풀려나 있다.
5공비리 관련 주요 공직자 7명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장씨를 비롯, 차규헌 전 교통부장관과 김재명 전 서울 지하철 공사사장 3명뿐이고 이학봉씨 등 4명은 집행 유예 등으로 석방됐다.
장세동 피고인에 대한 실형선고는 이학봉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점으로 미루어 다소 예상 밖으로 이 피고인의 판결 결과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장 피고인은 구속 기간이 6개월이나 지나 4개월만 복역하면 석방되게 된다.
아직 이들이 확정 판결을 받지 않았지만 상급심에서 1심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기란 새로운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기대하기 힘든 실정.
이 때문에 5공 비리의 사법처리 과정은 일단락 된 셈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들의 실망감·배신감만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친·인척 중에서도 전두환·전경환씨 형제와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승씨 등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처남 이창석씨, 사촌현 전순환씨 등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5공비리 관련자 중 특히 장세동, 이학봉씨가 핵심 인물로 구속 당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었다.
장씨는 5공시절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지낸 전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고 이씨는 전 전 대통령과 동시에 청와대 생활을 시작, 오랫동안 친·인척관리를 맡은데다 여당소속 현직 의원의 신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낸 것은 개인 비리는 없었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압력을 가했다는 내용뿐이어서 결국 이들은 직권 남용 혐의만으로 기소됐었다.
당시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은 대단했지만 검찰 수사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에 대한 법원의 가벼운 처벌은 일면 당연한 판결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사법부는 공소장의 범죄 사실에 대해 유·무죄를 가리고 형량의 경중을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장세동·이학봉 피고인을 가볍게 처벌한 공통된 판결 이유는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한 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피고인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정부의 기본 방침에 따른 것』 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인기가 없었던 5공의 핵심 고위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어떤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된다』며 여론 재판을 경계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집행 유예를 선고해야하는 재판부의 고민을 하소연하는 뜻도 있다고 보여진다.
또 국민 감정에 맞게 처벌할 수 있도록 이들의 범죄 사실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검찰의 잘못을 탓하는 의미도 읽을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부가 이들의 직권 남용에 유죄를 인정한 것만도 의의가 있다고 검찰을 나무라고 있다.
장·이 피고인의 변호인들은『이들이 경호실장·민정 수석 비서관으로 각각 재직했지만 양재동 사저 신축·부실 기업 정리는 직책에 따른 권한 사항이 아니므로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무죄를 주장했던 것.
그렇지만 5공비리 관련자에 대해 적절한 사법처리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책임이 검찰의 수사 잘못에 있든, 또는 사법부의 5공 비리 척결의지 미약에 있든 이들에 대한 재판결과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꼈던 엄청난 5공 비리에 대한 감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5공비리 청산 문제 중 가장 1차적인 구속인사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미흡하게 마무리된 것은 6공 정부에도 큰 부담을 주게될 것이 틀림없다.
이제 탈법·불법이 날뛰던 느낌을 주었던 5공 비리는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됐다.
결국 5공 비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은 무소부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른 고위 공직자는 시대가 바뀌면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지만 국민들의 검찰·법원에 대한불신감을 더욱 깊게 했다는 점에서 큰 부작용이 우려되고있다. <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