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변국들이 먼저 북한에 조처를 취하도록 할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쉬 박사는 이날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한 배경에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외교적인 속셈이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에 압력을 가해 북-미 양자회담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또 닉쉬 박사는 북한이 이 시점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배경과 관련해 "북한 군부와 외무성 사이의 어떤 마찰이 빚어진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계속해서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요구해온 북한이 결국 미사일 발사라는 도발행위를 선택한데에는 군부의 입김이 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미사일 발사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4일을 골랐을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사회과학원의 레온 시갈 박사는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이끌어내지 못하자, 미국에 대한 군사 억지력을 증강한다는 차원에서 미사일을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회담에 임할 준비가 될 때까지, 북한은 군사 억지력을 계속 늘려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시갈 박사는 그러나 부시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고 있는 만큼, 북한의 의도대로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를 움직여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려 할 것이고, 그만큼 미국이 북한과 가까운 시일 내에 협상할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시갈 박사는 전망했다.

닉쉬 박사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는 현재 이라크와 이란, 이스라엘 등 중동 문제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기존의 대북 금융제재를 더 확대하고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를 측면 지원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넓혀갈 것으로 닉쉬 박사는 전망했다.

워싱턴 소재 맨스필드연구소의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미국은 이번 일로 북한이 원하는 북-미 직접대화의 빌미를 주지 않고 또 일본과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먼저 북한에 대한 조처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 조용한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레이크 소장은 그러나 미국은 막후에서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조처를 취하기 위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집권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확산 담당관을 지낸 대니얼 포네먼씨는 미국이 안보리에서 어느 정도 강도로 북한을 제재하려는지 여부에 따라 다른 나라들의 반응이 다를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이번 행위로 인해 미국이 취하려는 조처에 대한 공감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협상 당시 미 국무부 소속으로 협상에 참여했던 조엘 윌트씨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번 일과 관련해 일치된 입장을 마련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다. 위트씨는 유엔 안보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국제법이나 합의를 위반한 것이 전혀 아니기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발사직후인 5일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등 주권국가라고 하는 곳은 모두 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시험발사는 누구에게 위협을 주는 그런 게 아니며 국제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말했다.

대북 강경론자인 워싱턴의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소의 오공단 박사는 북한의 경우를 일반적인 다른 나라의 상황에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합다.오공단 박사는 북한은 위조 달러화 제조, 유통과 관련해 미국이 가하고 있는 금융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워낙 완강하기 때문에 6자회담 재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역시 그동안 줄곧 금융제재와 6자회담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해 왔다.

이와 관련해 조엘 위트씨는 6자회담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위트씨는 6자회담은 회담 당사국들 간의 긴장을 관리하는데는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더이상 유용한 수단이 아니라면서 미국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엘 위트씨는 북-미 간 양자대화가 핵을 포함한 현안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5일자 사설에서 "잘못은 북한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북한을 좀더 배려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되살리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최원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