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쪽 「방정식」에 노골적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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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의 향후 정국 구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정계 개편론을 둘러싸고 민정당내에 이견 대립이 표면화하고 있다.
박준규 대표를 비롯, 김윤환 총무 등 당내 경북 세력 또는 구 공화파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있는 정책 연합→연정→합당 등의 정계 개편 구상에 대해 이종찬 총장을 중심으로 한 일군이 반대의 기치를 노골적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계 개편안을 둘러싼 마찰과 잡음은 앞으로 전개될 세력 개편에 대한 시각차이에 기인하는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당내계파간 장기적인 입지 확보를 위한 신경전의 양상을 띠고있어 시간이 갈수록 갈등의 진통은 보다 뚜렷해질 것 같다.
○…대립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것은 15일 이 총장이 신중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나섰기 때문.
그 동안 박 대표의 정계개편 구도에 반대론의 강도를 서서히 높여 오던 이 총장은 이날 노태우 대통령에게 당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정계 개편론에 언급,『조급한 정계 개편 추진 의사는 오히려 일을 그르칠 염려가 있으니 자제되어야 하며 사안의 신중한 추진을 위해 노 대통령이 자제 촉구 의사를 표명해달라』는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아직 정책 연합·연정등을 거론할 시기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고 △섣부른 개편론은 야권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며 △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공화당 또는 민주당을 민정당의 정치 파트너로 상정하는 것은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지역감정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총장의 이날 건의는 이미 상당기간 준비해온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지금이 그와 같은 정계 개편 추진 움직임에 대해 일단 제동을 걸어둘 타이밍이라고 본 것 같다.
이 총장의 건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박 대표 등 구 공화파의 정계개편추진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이 기회에 민정당 본류로 자처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못 박아두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총장은 박 대표의 정계 개편논이 김종필 총재의 공화당을 중심 파트너로 구상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이는 박 대표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숨어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으며 나아가 박 대표 등 구 공화당 출신 외인부대 세력이 민자당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방관하지 만은 않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 총장측이 정계 개편론을 민정당 본류와 외인 부대간의 알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이른바 민정당의 주류인 TK(대구-경북)세력이 중심이 되는 정계 개편 구도가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고 보여진다.
즉 박 대표나 김윤환 총무 등이 추진하는 방식으로 정계 개편이 추진된다면 구 공화세력, 또는 TK를 중심한 영남 세력 중심으로 정계가 개편될 것이 분명하고 그럴 경우 서울-경기일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총장으로서는 극도로 세가 불리해질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정계 개편 구상은 그의 캐나다 방문중 「오타와 발언」에서 본격화했고 14일 귀국 회견에서 또 한번 강조되었다.
이승윤 정책위 의장·김윤환 총무 등 구공화 출신 당직자들을 중심으로지지를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표의 개편 구상은 이른바 정책연합→연정→정당 통합의 3단계 방식.
박 대표는 서 의원 사건으로 성숙된 공안 정국 분위기를 이용,「자유 민주 체제 수호 정당끼리의 대열 정비」를 천명함으로써 평민당을 은연중 고립시키고 공화당과 민주당을 확 끌어 들이려는 보수 연합 구상을 보였는데 같은 시기에 김종필 총재도 이에 화답하고 나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특히 박 대표와 김 총재가 부르고있는 듀엣 (이중창) 은 내각제 개헌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 민정당내 구 공화파와 공화당 세력간의 공감대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박 대표는 귀국 회견에서 자신의 개편론에 언급, 정책 연합의 첫 작품이 올9월 정기 국회에서 나올 것이라고 장담해 단순한 애드벌룬의 차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개편을 추진해 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이 총장을 중심으로 한 민정당 본류파와 일정한 수의 원외 지구당 위원장들은 몇 가지 논리로 제동을 걸고있다.
이 총장은 최근 전북 금제 청년 자원 봉사단 행사 연설 등 일련의 발언을 통해 정계개편은 지역 감정을 해소하고 정치적 대화합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따라서 평민당의 참여와 협조를 기대할 수 있는 구상으로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해왔다.
이 총장은 특히 『평민당을 고립시킬 경우 현재의 동서 대립 구조가 확정되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계론을 펴고있다.
이 총장은 『기본적으로 내각제 구도에는 당정간 상당한 공감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모든 정치 세력과의 연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전제일 것』이라고 밝혀 내각제 개헌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있다.
이 총장은 △정계 개편이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여건이 성숙되어 자연스럽게「헤쳐모여」할 수 있는 화학적 결합이어야지 물리적 결합이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이와 같은 구도에는 민정당 내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일부의 동조를 받고 있고 정치권 밖의 김복동씨 등 몇몇 인사들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여권은 향후 정계개편을 둘러싸고 백가쟁명식 논의가 만개해 커다란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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