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 날린 '늙은 피에로'… 소속팀 승부 조작설에 대표팀선 찬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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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델 피에로에게 공이 집중되면서 이탈리아의 공격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독일 수비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벤투스에서 오래 호흡을 맞췄던 리피 감독은 델 피에로가 활동 폭은 좁지만 볼을 잡으면 반드시 예리한 돌파나 스루패스로 찬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장 후반 14분 델 피에로의 코너킥이 수비를 맞고 흘렀고, 공을 잡은 안드레아 피를로의 패스가 파비오 그로소의 결승골로 연결됐다. 승부의 마침표도 델 피에로가 찍었다. 역습 기회에서 질라르디노의 패스를 받은 그는 달려나온 골키퍼 레만의 오른쪽으로 감기는 절묘한 슈팅으로 독일을 주저앉혔다.

델 피에로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소속팀 유벤투스는 승부 조작이 드러나 세리아 C1(3부리그)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고 자신도 대표팀에서 루카 토니, 질라르디노 등 '젊은 피'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었다.

독일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단 2경기(1골)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본선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6경기 중에 뛴 것은 4경기(137분)였다. 그나마 풀타임 출전은 한번도 없었고, 호주와 16강전에 처음으로 선발출전했지만 후반 30분 교체됐다. 독일전 역시 긴장감 속에 벤치를 지키다가 연장전 전반이 끝나갈 무렵에야 투입됐다.

하지만 델 피에로는 치렁치렁한 곱슬머리를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자르며 각오를 다졌고,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 줬다. 그는 "독일의 홈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며 "최근 비난을 많이 받아 왔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나의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흥분했다.

델 피에로는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결승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94 미국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결승에 오른 이탈리아는 노장 델 피에로의 부활에 큰 힘을 얻고 있다.

도르트문트=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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