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좀 합니까” 해외통 은행장의 디지털 본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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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본통’ 진옥동 신한은행장

‘일본통’ 진옥동 신한은행장

진옥동(58) 신한은행장과 지성규(56) KEB하나은행장. 취임한 지 한 달여 된 두 신임 은행장이 보폭을 넓히고 있다. 두 행장은 ‘해외통’이란 점이 닮은꼴이다. 똑같이 디지털과 글로벌의 깃발을 내걸었지만 서로 추구하는 노선은 다르다.

신한 진옥동, 하나 지성규 행장 #취임 한 달 IT 인력 키우기 닮은꼴 #“밖서 충원” “내부 육성” 방식 달라 #일본통 진 행장 “미·일 M&A 고려” #중국통 지 행장 “신남방국가 진출”

지난달 26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갑자기 서춘석 부행장(디지털그룹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과거 은행원은 상경계 출신을 뽑아 전환배치로 정보기술(IT) 인력을 양성했습니다. 저기 계신 디지털 부문장도 상경계에서 와서 IT를 배웠죠. 본인의 IT 능력보다 인사이동으로 (디지털) 부문장까지 되신 겁니다.” 현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어 진 행장은 “앞으로는 IT 인력을 뽑아서 영업사원으로 써야 한다”며 “그 정도로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진정한 디지털 기업으로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 행장의 말이 현실화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한은행의 상반기 채용 계획에 디지털·정보통신기술(ICT) 인력의 수시채용이 포함됐다. 디지털·ICT 분야는 코딩 능력을 평가하는 실습 전형이 핵심 관문이다. “학력보다 직무역량을 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상반기 은행채용을 총괄하는 팀장도 인공지능(AI) 사업을 추진해온 ICT 출신 전문가에 맡겼다. 인적 변화를 통해 은행 체질을 ICT 중심으로 확 바꿔 놓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중국통’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중국통’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취임 때부터 디지털을 외친 건 지성규 하나은행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취임 일성은 “디지털 기반 정보회사로의 변모”였다. 지 행장은 우선 은행 직원 1만3000명 중 최소 2000명은 코딩을 할 수 있는 인력으로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지 행장은 “디지털 전환을 가장 잘하는 싱가포르 DBS은행은 IT 인력이 25%를 차지한다”며 “그렇게 하려면 IT 인력이 3000명 이상 돼야 하지만 우선 2000명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IT 인력 충원에 방점을 둔 신한은행과 달리 기존 은행원의 IT 인력화에 무게를 뒀다.

지 행장의 전략엔 은행 지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교육을 통해 기존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담겨있다. 하나은행이 직원별 전공과 부전공을 정하도록 한 것도 맞물려 있다. 예컨대 ‘전공 기업영업, 부전공은 디지털’로 정해서 언제든지 업무 전환이 가능하도록 준비시킨다는 구상이다.

각 은행에서 손꼽히는 해외통인 두 행장은 글로벌 전략에서도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일본에서 19년 근무한 ‘일본통’인 진 행장은 기축통화 지역을 강조한다. 그가 설립 작업을 주도했던 SBJ(신한뱅크재팬)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2500억 엔을 신한은행에 조달하며 든든한 외화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SBJ는 신한금융그룹 글로벌 자산의 25%를 차지하는 거점이 됐다. 진 행장은 “한국의 통화 변동 리스크를 고려하면 미국·일본 같은 기축통화 지역에 똘똘한 채널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인수합병(M&A)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중국통’ 지 행장은 16년 넘게 근무했던 중국에 이어 신남방 국가(인도+아세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법인이 모바일 메신저 기업 라인의 자회사 라인파이낸셜아시아와 손잡고 준비 중인 ‘라인뱅크’가 그 선두주자다. 라인뱅크는 현지 금융당국 승인이 나는 대로 인도네시아 최초의 모바일 은행으로 출범할 예정이다. 지 행장은 “섬이 많고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인도네시아는 모바일 은행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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