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동구 나들이 "제한된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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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대통령으로선 네 번째 폴란드 방문이자 첫 번째 헝가리 방문으로 기록된 「부시」 대통령의 이번 동유럽 방문은 그 동안 외교에서 독창성이 결여돼있다는 비난을 받아온「부시」대통령이 소련의 앞마당에서 자신의 외교 스타일과 역량을 과시한 좋은 계기가 됐다.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는 동 유럽 국가들 중 정치·경제개혁의 선두 주자로, 서방측에 대한 접근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방 국가들의 수장격인 미국 대통령의 방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시」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전례 없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 지난달 서독을 방문한 「고르바초프」가 서독 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사실과 함께 국제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실감케 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가 이처럼 우호적 태도를 보인 것은 국내적 요인, 특히 경제적 이유에서다. 폴란드 경제는 현재 거의 파국 직전이다. 년 1백%에 가까운 인플레, 4백억 달러에 가까운 엄청난 외채, 생산 설비의 노후화로 인한 물자 부족 등 삼중고로 시달리고있다.
헝가리도 1백80억 달러의 외채로 국민 1인당 외채가 동유럽 국가 중 가장 많으며 자본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같은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서방측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부시」가 이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원조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폴란드의 경우 1억1천5백만 달러의 원조와 3억2천5백만 달러의 차관제공 약속에 그쳤으며, 헝가리에는 3천6백만 달러 원조와 최혜국 대우 약속을 했을 뿐이다..
이 같은 한계 설정은 현재 미국 자신이 겪고있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국이 기본적으로 소련의 영향권에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시」는 처음부터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양국의 정치개혁을「역사적 사건」이며 「냉전시대는 끝났다」고 최상급의 수사로 찬양했으나 기본적 틀을 깨는 반소적 언사는 거의 입밖에 내지 않았다.
한편 이 같은 급격한 변화를 바라보는 소련은 자신으로서는 도와줄 여력이 없으니 양국이 서방국가들과 접근해서라도 경제난을 해결하도록 허용하는 입장이다. 때마침 지난 6,7일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바르샤바 조약 기구 정상 회담은 폐막 성명에서 「사회주의에는 세계적 모델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어느 나라도 진실을 독점할 수 없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자결권을 보장한다는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그 동안 동유럽을 지배해온 「브레즈네프」독트린의 제한 주권론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부시」대통령의 동유럽 방문은 현재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제관계의 큰 변화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한 사건이며 앞으로 더 큰 변화를 예고하는 조짐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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