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 잃은 「다짐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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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은 우선 자율이라는 말로 구체적이고 가시적 의미를 갖는다·.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간섭의 극소화 또는 간섭의 배제를 의미한다.
그래서 6공화국정부는 출범직후부티 민주화작업의 일환으로 사회 각 부문에 간선을 최대한 줄이고 자율성을 최대한 제고하는, 이른바「작은 정부」쪽으로 각종 시책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흐름을 보면 정부측의 공언과는 달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안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일련의 사태야 국기에 직결되는 문제라 접어둔다 해도 공직자 사치추방지침이나 경제6단체의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다짐대회가 정부의 입김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 등은 정부가 그렇게 강조해온 자율성이 어디로 갔는가를 의심케 한다.
사문화 돼 가는 가정의례 법을 엄격히 적용해서라도 최근에 만연되고 있는 일부계층의 분에 넘친 과소비나 사치·향락풍조를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이해가 안 가는바 아니다.
그러나 외제차구입자는 무조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거나 공직자 수범 지침을 어긴 공직자는 「가차없이」 인사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식의 수법은 과거 3공화국이나 5공화국시대의 의식구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업인들의 다짐대회라는 것도 그것이 갖는 여러 갈래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행사가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치러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계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3년간의 노사분규 등으로 기업도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자성론이 폭넓게 확산돼 놨다.
전경련이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업종을 이전하는 등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어온 것도 그 같은 분위기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행사도 그 같은 분위기를 배경에 깔고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재계인사라고 하기보다는 전직 총리나 부총리로서의 위치가 더 크게 보이는 관 출신 원로들이 나란히 서서 다짐 문을 읽는 모습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느낄 것 인가도 한번쯤 생각해 봤어야 한다.
이제는 정부도 과거의 의식구조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재식><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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