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화 탈바꿈 "진퇴양난"|소 루불 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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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소련은 경제 개혁 정책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루블화의 태환성 문제를 놓고 신중한 검토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1월 「카멘체프」소련 제1부수상은『루블의 환율을 실세에 맞추겠다』고 언급, 루블화의 교환성 실현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소련정부의 적극적 자세를 보였다.
소련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루블화의 50% 절하를 우선 실시하겠다고 공표해 놓고 있는데 소련이 국제 경제 사회에 본격 참가하기 위해서는 루블화의 국제화폐로서의 태환성 실현이 필수 불가결이다.
소련 정부는 미 달러 등의 환율 변동에 따라 외국 통화와의 환율표를 발표, 현재 달러부 0·6루블로 돼 있으나 기축통화인 달러와의 태환성은 없다.
이 때문에 소련에 진출한 서방측 합작 회사들은 루블화로 얻은 기업 이윤을 외화로 바꿔 송금할 수 없다. 따라서 합작 기업들은 현지에서 생산되는 목재·수산물 등을 구입, 이를 본국에 수출하는 방식을 취하고있다.
이 같은 실정에서 소련이 기업의 독립 채산제나 서방 기업과의 합작 투자에 의한 경제개혁을 추진해가기 어렵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루블화의 태환성 실현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루블화의 태환성 실현을 위해 장기적·구체적 계획을 명확히 발표해놓고 있지는 않으나, 지난번 「카멘체프」제1 부수상이 밝힌 「단계적 조치」의 내용은 ▲90년 1월부터 루블화를 50% 평가 절하한다 ▲소련 기업들끼리 외화와 루블화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외환 시장을 내년부터 년 3회 개최 한다는 것 등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지난 5일「고르바초프」서기장의 방불 때 수행한「발렌틴· 파블로픈프」재무상이 루블화의 태환을 오는 2005년까지 연기함으로써 다시 늦춰졌다.
루블화의 태환성 실현을 위해 넘어야할 벽은 많다. 소련의 대외 무역은 국제 시장 가격을 베이스로 한 외화로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기초 식료품의 경우 정부 보조로 저가격을 유지하는 등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의 차이가 매우 크다.
또 현재 루블화의 공정환율인 달러당 0·6루블은 서방 시장에서의 실제가격보다 약4∼5배높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수출 기업에 대해서는 차액 부분을 전액 정부가 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소련 정부로서는 기업에 대한 보조금제도를 폐지하고, 오랫동안 저 가격을 유지해온 식료품 가격 등을 올리고, 값이 싼 내구 소비재 가격을 올려 국제 시장 가격에 가깝게 조정하는 등 가격개혁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으나, 이 같은 조치를 시급히 취할 때 엄청난 인플레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경제 개혁에 있어 소련에 앞서가고 있는 중국이 같은 상황에서 비롯된 고 인플레로 호된 시련을 받고 있음이 현실이다.
한 서방 전문가는 내년 1월 소련이 루블화를 50% 평가 절하하고 나서 일정시간이 지난다음 다시 몇 50%를 평가절하 하여 공정 환율을 단계적으로 실세에 가깝게 맞춰 가는 한편, 외국계 기업·수출입 기업에 한해 새로 창설한 외환시장에서 일정 비율의 외화교환을 인정해 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또 루블화의 교환성 실현을 위해선 소련 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 만성적인 공급부족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소비재 생산의 증대가 무엇보다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하고있다.
서방측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소련이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시대에 뒤쳐진 가격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문제이며 이 문제의 해결이「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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