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관제 「결의대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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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최근 공권력 행사의 강화를 통해 사회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경제 생활 분야에서도 강력한 영향력 행사를 하고있다.
날로 심해지고 있는 과소비·호화 사치 풍조를 억제하기 위한 한 시도로 거의 사문화된 가정 의례법을 되살리고 고급 외제 자동차 등의 구입자에 대한 세무 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동시에 6개 경제 단체에 영향력을 행사, 경제 난국 극복을 위한 다짐 대회를 갖고 투자 증대, 노사 문제의 자체내 해결, 사회적 낭비 배제와 경제적 불형평 시정 노력 등의 내용을 골자로하는 5개항 결의를 유도했다.
이와 같은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이런 노력을 이해하면서도 그 방법이 구 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 의례법이나 경제인들의 결의가 담고 있는 변혁은 첫째, 시민들과 경제 분야의 자생적 참여에서 분출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자생력이 솟아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그쳐야지 과거처럼 관제적 수법으로 유도하려 할 때 쇼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그런 시행 착오를 여러 번 겪었다.
예컨대 외제 승용차에 시장을 개방해놓고 그것을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세무 사찰 등의 제재를 가하는 것은 모순되는 조치다. 뿐 만 아니라 시장 개방 압력이 우리 상품 수출에 대한 보복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한다면 대외 공신력을 떨어뜨려 앞으로 더 큰 압력을 외국으로부터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국 상품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은 드러내 떠드는 것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순수한 국민운동을 유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경제인들의 결의도 필요하다면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는다. 이번 경제단체 결의는 71년 전경련이 채택한 「정치·경제 및 사회풍토 정화 구상」이나 80년에 비슷한 환경 속에서 나온 「기업 윤리 강령」과 다를 게 없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하는 듯한 다짐 대회 같은 것이 자꾸 벌어진다면 그것이 전체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획일성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 정부와 경제계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주의만 더욱 심화시키게 될까 우려된다.
사치 풍조를 퇴치하는 것도 급하고 기업 안에 존재하고 있는 갈등 요인을 해소하는 일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급한 일 일수록 합리적 판단과 방법을 통해 접근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강조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있어서 합리적 방법이란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인식 아래 자율성을 통해 사회 저변으로부터 자정의 의지가 솟아나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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