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 바로 잡아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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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즈음 통화의 유통 경로를 보면 통화 정책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돈이 막상 필요한 곳에서는 크게 모자라고 흘러가지 말아야 할 곳에는 넘친다. 통화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러 자금사정에 별 문제가 없어야 될텐데 기업은 자금난을 호소하고,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1차 부도위기를 겨우 넘기기도 했다.
은행 예금 증가세가 둔화되고 자금이 사채 시장으로 몰린다. 시중 실세금리는 계속 상승세다. 통화 정책이 크게 잘못되어 있는 데다 제반 경제정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나타난 현상들이다. 한은이 내놓은 통화 지표를 보면 기업의 자금난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총통화 증가율 (평잔 기준)이 6월 중에는 18·6%, 상반기 중에는 평균 19%에 이르렀다. 이 같은 총통화 증가율은 정부에서 경제 성장률·물가 등을 감안해서 시중 자금이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정해놓은 올해 억제 목표선 15∼18%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업계의 자금난이 심각한 것은 자금의 편재 현상이 심각한데다가 수출은 안되고 노사분규로 자금은 더욱 필요한데도 통화 지표에 얽매여 통화당국이 통화관리에 신축성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즈음 증시까지 침체되어 직접금융마저 원활하지 못 한 데 주요 원인이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의 흐름이 정상적이라면 기업의 자금 경재 현상이 일어날 이유가 없고, 사채 시장이 다시 흥청거릴 수 없을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증권·부동산 투기 등 재테크 할 자금 따로 계산하고 생산·투자 자금은 별도로 마련하려하니 자금난을 더 겪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업계의 자금난에 편승, 자금이 사채 시장에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 자금은 부동산 투기 봉쇄와 증시 침체로 사채 시장으로 몰리게 되어있으며 그나마 왕성한 자금수요 때문에 시중금리는 뛴다.
당면 주요 과제는 통화 당국이 경제 안정을 위한 통화증가 억제로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기 보다 왜곡된 돈의 흐름을 바로잡아 돈의 편재를 시정토록 노력하는 일이다.
통화 지표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시중에는 전주가 기업이 됐건, 개인이 됐건 각종 투기를 좇는 돈이 아직도 넘친다. 당국은 이같은 돈이 생산. 투자 등 건전한 경제 활동에 동원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제강화·자본 시장 정상화·투기 억제 등 다각적인 시도가 중요하다.사채나 투기 등의 돈 놀이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보다 유리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투기를 유발하지 않을 정도의 증시 부양책도 적절히 강구되어야 하며 사채시장의 창궐에 대해서는 잘 판단해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강력한 규제책이 나와야할 것이다.
자금난을 계기로 돈을 더 풀어야 된다는 업계의 요구가 만만치 않으나 이 같은 문제는 보유 부동산·증권 등의 처분으로 자구노력을 지켜본 다음의 과제라 본다.
통화 정책이 어려운 것은 그 원인에 대한 책임이 통화 당국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통화당국은 대통령 선거 때나 금리 자유화 때 통화를 방만하게 운용한 결과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것이다.
돈의 흐름이 고르지 못하고 급격한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것은 통화 정책이 균형을 잃고 무계획적인 결과다.
요즈음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기업 여신 관리 강화·대출금 강력 회수·금융 비용 부담 증가 등 통화 정책의 부조를 지적하자면 한이 없다.
통화 정책이 전체 경제 정책과 조화되고 합리적이어야 되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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