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현상 붙은 임종석 전대협 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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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 된지 5개월이 지나도록 검찰과 경찰 수사망을 비웃으며 평양 축전에 전대협 대표를 파견하고 「남북 청년 학생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공동 선언문」 초안을 발표한 전대협 의장 임종석 군 (23·한양대 총 학생회장·무기재료공학 4).
운동권 대학생 사이에서는 「의장님」으로 불리고, 당국에서는 1계급 특진과 현상금 1천만원 하는 임군은 서울 용문고를 졸업, 86년 한양대에 입학할 때엔 자동차 중개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4형제 중 3남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2학년 때까지 학업 성적이 평점 3·0 이상을 유지했고 학생들이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군사 교육 과목에서도 A를 받을 정도의 모범생.
이러한 임군이 사회 현실에 눈을 뜨고 운동권 논리에 빠진 것은 2학년 2학기 때 교내 노래 서클 「소리 개벽」에 가입하면서부터.
임군은 서클 활동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소외 계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그다지 외향적이지 못한 임군은 학생 운동의 중심부로 조금씩 접근해 감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투쟁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87년 2학기말 공대 학생 회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88년11월 총 학생 회장에 선출되면서 임 군은 학생 운동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당시 건국대 사태로 학생 운동권의 중심이었던 서울대 세력이 약화되고 연세대·고려대에 서도 운동권 주류인 NLPDR (민족 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 계열의 주사파가 총 학생 회장 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임군은 「얼굴 마담」으로 전대협·서총련 임시 의장직을 맡게됐다.
지난해 11월 각 대학 총 학생회장 선거 공약으로 평양 축전 참가가 언급되고 북한이 같은 해 12월 전대협을 초청하면서 임군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어 지난 2월 여의도 농민 대회를 주도한 협의로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되면서부터 감행이 시작됐고 대학가 중요집회에는 반드시 나타났다.
임군은 전대협 임시 의장을 맡으면서 「허세」라는 평을 들었으나 운동권 내부 불멸의 원칙인 「철의 법칙」 (늘 남에게 겸손하고 주변일상사에 충실하도록 노력하라는 핵심 운동권 학생들의 자체 규약)을 철저히 지켜 늘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통솔력을 발휘, 전대협을 이끌어나가 「실세」가 되었다는게 주위의 평이다.
임군은 지난 6월 중순 평축 참가와 관련, 정부와 협의할 수 있다는 기자 회견을 하면서 전문환 축전 위원장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나 기자들이 항의하자 정중히 사과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해명할 정도로 치밀했다.
임군의 신출귀몰 5개월은 이 같은 치밀한 성격과 투사적 생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기에 많은 학생들이 보호를 자청해 가능했다고 임군의 오랜 친구 조모군 (23)은 설명한다.
임군 주위에는 항상 5∼6명의 「경호 학생」이 뒤따르며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신 경찰에 잡히기도 한다.
임군은 지난달 8일에는 여장에 가발과 안경을 쓰고 연세대로 가기 위해 한양대 앞에서 시내 버스를 탔다가 이를 눈치챈 경찰의 추격을 받았으나 버스 안에 함께 탄 「경호 학생」 5명이 경찰과 몸싸움하는 사이에 버스 차창 밖으로 달아났고 경호 학생들만 경찰에 붙잡혔다.
또 지난 1일 한양대에서 8천여명의 경찰 숲을 뚫고 백주의 탈주극을 연출할 때도 교내 인 문관 지하 하수도에 숨어 있다가 동료 학생 3백여명이 화염법과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학교 후문 쪽으로 뛰쳐나가 경찰과 몸싸움하는 사이에 전경들에게 『수고한다』며 어깨를 두드리는 등 여유를 보이면서 사라졌다.
경찰은 임군이 현재 남학생 3명, 여학생 5명의 도움을 받아 도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치안 본부 특수대 1개반으로 전대협 간부 검거 특별반을 편성, 치안 본부 수사 부장 최남수 경무관을 검거 독려 반장으로 해 임군 검거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임군이 언제까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며 학생 운동권 최대 조직인 전대협을 이끌어 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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