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반도 전쟁 원치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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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페레스트로이카 (개혁) 및 글라스노스트 (개방)등 이른바 새 사고를 앞세운 「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경제 협력·군사적 안정·군축 등 대동 아시아 정책을 진지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 추구로 이어지고 있다고 「라잔·메논」박사 (미 리하이대·국제 정치학)가 주장했다.
「메논」 박사는 미 정부 간행물 『공산주의 제문제』지에 기고한 「새로운 사고-동북아 안보」논문에서 소련은 이 같은 페레스트로이카 등 양대 정책과 병행해 강대국의 대결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한반도에서의 국지 전쟁 발발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메논」박사의 논문 가운데 북한-소련관계 부분을 요약한 내용이다.
소련은 수년간 북한의 한반도 군축 및 안보 제안을지지해 왔다. 이 제안은 남북한 상호불가침·상호 감군·한미 군사 훈련 중단·주한 미군 철수 및 한반도 통일을 골자로 한 것이다.
소련은 반면에 한국측의 남북한 교차 승인안은 거부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새 사고는 다극 세계 질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소련의 정통적 입장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독일 방식으로의 접근으로 몰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은 소련에 있어서 주한 미군과 소련군과의 완충 지대이며 따라서 북한은 소련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소·북한은 국경선의 길이가 25km에 불과하지만 소련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소 국경에서 1백7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더욱이 북한 연안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입출항하는 소련 함정의 움직임을 그대로 관찰이 가능하다.
소련은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과 아울러 대북한 정책에서 중국과의 경쟁관계에 있어 대북 원조·무역·군비의 주요 공급원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 고위 인사들이 수시로 평양을 방문해왔다. 북한 방문 주요 고위 인사로는▲ 「카피차」전 외무차관 (1984년) ▲「알리예프」부수상 (1985년) ▲「셰바르드나제」외상 (1986년) ▲ 「체브리코르」 KGB의장 (1988년)등이 있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1984년과 86년 두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김일성은 1984년 소련 방문시 미그-23 60대와 지대공 미사일 SA·3 30기를 소련으로부터 제공방기로 약속 받았으며 미그-23기는 85년부터 인도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86년 소련 방문 시 소련은 미그-29 및 수호이-25기, SA-5 대공 미사일, 그리고 조기 경보용 레이다 틴 실드의 제공을 약속했다.
소련의 미그기 북한 인도 약속은 한국공군의 F-16기 30대 구입과 주일미사와 미 공군 기지의 F-16기 배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미그기 제공은 남북한 군사력 균형을 깨지는 않았다. 미그-23 및 미그-29는 미국의 F-16 보다 우월한 기종이 아니고 SA-3이나 SA-5도 방어용 미사일에 불과하다.
SA-5의 성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SA-3은 지난 82년 시리아가 레바논 전투에서 사용했다가 이스라엘의 대응 수단에 아주 취약함을 드러냈었다.
소련의 이 같은 대북한 무기 공급은 소·북한 군사 협력의 강화를 대변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이 소련이 정통적인 모험 방지 정책을 포기했다거나 한반도 군사력 균형 유지의 중요성을 앞장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김일성의 통일론과 소·북한 안보 조약, 그리고 주한 미군의 존재를 감안, 소련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결국 강대국의 충돌로 이어질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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