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윤리와 부고지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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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 서 의원의 입북 사실을 알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언론인에 대한 부고지죄 적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취재원 보호를 기본적인 직업윤리로 삼는 기자에게 국가보안법상의 부고지죄를 적용하는 것은 언론윤리의 중대한 침해일뿐더러 자유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는 처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국가보안법이 개폐 대상에 올라있다든가, 동법 제10조에 규정한 부고지죄가 가족과 친지, 성직자와 신도간에 지켜야 할 성직자 윤리까지도 무시하고 고발토록 하는 반인륜적 법 조항이라는 시비에 대해논평을 유보한다.
다만 공안당국의 무차별적인 법 적용 대상과 범위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법도 엄연한 법이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선별 없는 법 적용으로 미칠 중대한 영향은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다.
언론만 하더라도 「취재원 보호」는 언론 활동의 생명이라 할만큼 자유언론을 지키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언론윤리의 핵심적 내용이다. 만약 기자에게 털어놓은 사실이 정부권력에 불리한 내용일 때 이러한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만 한다면 기자는 밀고자로 불신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언론활동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위축시킬 것은 자명하다.
언론의 기본 사명과 기능이 「취재해서 알리는 것」인데 취재원의 공개를 강제하고 취재한 사실을 당국에 알리지 않음으로 해서 처벌을 받게 한다면 언론활동은 물론 언론의 존립자체마저 위태로워질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이럴 경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자유나 국민의 알 권리는 침해될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게되며 총체적인 국익의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물론 서 의원 밀입북 사건과 연이은 전대협 대표 임양의 북한 잠행으로 나라 안이 온통 충격과 위기감으로 휩싸여 있고 국가 존립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어느 때 보다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서 의원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서 의원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서는 숱한 방증과 보강 수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이 사건 관련 인물에 대한 신병확보가 급선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공안당국이 서 의원 밀입북 사건과 관련, 부고지죄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언론인에 대해 사전 영장을 발부한 진정한 목적이 부고지에 대한 처벌에 있다기 보다는 서 의원 사건의 본격수사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서 의원 사건 수사가 줄기나 뿌리에 해당하는 수사라면 부고지죄 수사는 곁가지 수사라 할 수 있다.
언론인에 대한 수사의 성격이 이러하다면 구태여 사전 영장까지 발부해 구속수사를 벌여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더구나 항간에는 평민당 주변에 서 의원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이 1백명 가까이 될 것이라는 보도이고 보면 그 많은 사람을 구속한다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닐 뿐더러 그로 인한 평민당의 사정과 정국경색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감안할 때 공안당국의 실정법 적용대상과 범위 등 부고지죄 운용은 매우 신중성이 요구된다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부고지죄를 적용한 언론인에 대한 구속은 국가안보나 존립이라는 국익과 언론 자유라는 가치와 국익과의 상충이고 마찰이라고 볼 때 어느 가치와 이익을 우선해야 할 것인가는 당연히 교량 되어야 할 문제다. 두 가치와 이익을 다같이 존중하고 손상되지 않도록 수사의 실을 거두는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법 운용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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