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식 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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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의 유명한 수필가 「알프레드·가디너」는 「악수」에 대해 재미있는 글을 쏜 적이. 있다.
『인사할 때 거기 수반하여 손잡는 맛이 없다면 그것은 일격을 가하는 기분, 혹은 낙인이 없는 증서 같은 것이고, 계모의 숨결처럼 찬바람이 일 것이며, 서명까지도 타이프로 찍은 편지처럼 공식적일 것이다. …악수는 동양인의 의례적인 안수례와 러시아인의 거창한 포옹의 중간적인 온건한 중용을 취한 것으로서 아라비아인의 손끝을 가슴에 대는 예만큼 위엄은 없다하더라도 따뜻한 맛과 인간적인 우애정신을 더욱 지닌 것이다…』
그에 의하면 악수는 너무 표현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인격을 완전히 드러낸다고 한다.
악수는 원래 앵글로 색슨계 민족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나누던 인사였지만 이제는 범세계적 인사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독특한 인사를 나누는 민족이 적지 않다. 에스키모족은 서로 뺨을 치는게 반가운 인사고, 티베트인들은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며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친근감을 표시한다. 통가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두 눈을 부라리며 아래위로 굴리고, 폴리네시안은 콧등을 서로 비벼댄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에서는 뺨과 발바닥을 핥거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인사를 하는 종족들이 있다.
한국·중국·일본의 전통적인 인사법은 상반신을 굽히는 절이다. 그것도 평교 간이라면 그저 가볍게 머리만 수그리면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방 예의지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리는 예로부터 인사법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아침·낮·저녁 인사가 다르고, 상봉·이별·문안·안부 인사가 각기 다르다. 가급적 몸과 살을 대지 않는게 점잖은 인사다.
그런데 얼마 전 문익환씨가 북한의 김일성과 양 볼을 비비며 포옹하는게 TV 화면에 비쳐 화제가 되더니 이번에는 서경원씨가 또 김일성과 만났을 때 포옹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근 평축에 참가한 임수경양도 김일성이 그런 포옹으로 맞아줄 것이 틀림없다.
포옹이란 앞서 「가디너」도 지적했듯이 러시아식 인사다. 추운 지방이라 체온이 아쉬워 그런 인사법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해가 안가는 것은 「주체」를 신주처럼 모시는 김일성이 우리 인사법을 놔두고 왜 어색한 러시아식 포옹을 애용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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