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싹대던' 부시는 어디로 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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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난 줄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몰랐다. 지난 수요일 오후 최근 바그다드를 다녀온 의원들을 불러 백악관에서 회의를 주재했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부시에게 조언했다. 레이 라후드(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은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를 죽이려 노력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 말에 소리 죽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르카위 암살 기도라고? 마치 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회의 도중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밖으로 불려나갔다. 몇 분 뒤 그가 돌아오자 부시는 무슨 일인지 알아내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봤다. 부시는 이라크 정부가 마침내 내각의 요직을 모두 채웠다는 소식을 기다렸었다. 백악관은 그것을 이라크가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신호라고 내세우려 했다. 하지만 백발의 해들리는 냉정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떤 감정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부시는 얼굴을 찡그리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부시의 입단속 변천사

부시는 9·11 테러 직후,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초기 단계에 미국의 적들을 묘사할 때 강경한 표현을 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조심스러워졌다.

2001년 9월 17일
"나는 정의를 원한다. 서부에 옛날 포스터가 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지명 수배 : 생사 무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기를 바라느냐고 국방부의 한 직원이 물었을 때 부시의 답변.

2005년 1월 13일
"나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첫 번째 임기 중 아마 몇 가지 약간 거친 말을 했다.”
부시는 두 번째 임기 취임식 직전 황금시간대 TV 인터뷰 도중 ‘덤빌 테면 덤비라’고 한 발언이 지나쳤을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2003년 7월 3일
"내 답변은 ‘덤빌 테면 덤비라’는 것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겨냥한 공격의 증가에 관해 한 기자가 물었을 때 부시의 답변.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의 비행 갑판에서 ‘임무 완수’라고 적힌 깃발 아래 선 지 두 달 후.

2006년 5월 25일
"어쩌면 좀 더 세련된 태도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약간 배웠다.”
백악관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함께 섰을 때. 부시는 자신이 때때로 “엉뚱한 신호를 보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2006년 6월 8일
"자르카위는 죽었지만 이라크에서 어렵고 필요한 임무는 계속된다. 그가 없어도 테러범과 반군들이 저항을 계속하리라 예상된다.”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사망 소식을 들은 부시의 신중한 반응.

그 후 대통령과 고위 측근들이 백악관 집무실에 모였다. “해들리, 내게 전할 말 있소?” 부시가 불쑥 내뱉었다. “예, 있습니다.” 해들리가 대답했다.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들릴 듯 말 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라크에서의 또 다른 좌절을 예상하며 보좌관들은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해들리가 부시에게 전한 말은 자르카위의 사망이 거의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대장이 그 테러범의 시체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시신이 자르카위인지 확인하려면 2~3시간이 걸린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잘된 일이지.” 부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통령은 미군이 최근 자르카위 색출 노력을 강화했음은 알았지만 그의 안가를 공습할 계획이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보좌관들이 백악관 집무실로 다시 들어갔을 때 부시의 기분이 들떠 있었다고 그 자리에 있던 한 백악관 보좌관은 전했다(그는 이 기사에 인용된 모든 백악관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실명으로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따랐다). “자르카위를 해치운 모양”이라고 부시가 발표했다. 댄 배틀렛 고문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야, 레이 라후드 의원이 족집게일세.” 측근들이 웃다 말고 잠잠해졌다. 자르카위가 없어져도 이라크 문제로 서로 손을 마주치려면 아직 멀었음을 모두 금세 깨달았다고 그 부시 측근은 전했다.

백악관 측으로서는 자르카위의 예기치 못한 사망은 반군 문제에서 몇 달 만에 처음 듣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통령과 보좌관들은 자아도취에 빠지면 좋은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부시는 ‘덤빌 테면 덤벼보라’며 호기를 부리는 경향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면서 신망을 잃었다(반군들이 실제로 죽기 살기로 저항해 큰 낭패를 봤다).

그래서 지금은 좋은 소식이 있어도 사람들의 기대를 높이는 일은 피한다. 백악관에서 자르카위의 사망을 발표할 때도 표정이 엄숙했다. “이라크에서의 어렵지만 필요한 임무는 계속됩니다. 그가 없어도 테러범들과 반군들이 저항을 계속하리라 예상됩니다. 종파 간 폭력사태도 계속되리라 예상됩니다.” (오랫동안 시달려온 보좌관들은 자기들끼리 조금이나마 자축하기는 해야 했다. “이곳의 분위기에서 사람들의 기쁨이 확연히 느껴진다”고 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말했다. “좋은 소식은 뭐라 해도 좋은 소식이다. 많지 않아서 문제지 있으면 당연히 기뻐할 일이다.”)

백악관의 접근방식이 신중하고 겸손하게 바뀌었다. 부시의 이라크 정책(그리고 부시 자신)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되찾으려는 더 큰 백악관 전략의 일환이다(부시의 지지율은 바닥을 긴다). 이라크 정부와 치안병력의 발전을 널리 홍보하고 반군 퇴치에 신중한 낙관을 표출함으로써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고 있음을 보여주자는 생각이다. 그러자면 엄격한 입단속(백악관의 특기)과 잠복한 오만의 돌출을 막으려는 끊임없는 긴장이 필요하다.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의회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전쟁에 발목 잡힐까 두려워 부시의 지지도 회복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백악관의 미묘한 입장 변화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공화당 지도자들은 금세 백악관 계획의 모든 원칙을 어겼다. 자르카위의 죽음을 테러 전쟁의 커다란 승리라고 찬양하며 민주당원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웠다.

백악관의 새 전략은 지난해 말 부상했다. 여론조사 결과 부시가 마치 최악의 수렁에 빠진 듯한 직후였다. 국민은 명분 있는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한 상당히 많은 희생자가 생겨도 용납할 것이며, 부시의 계획이 결국에는 성공하리라고 고위 측근들은 믿었다. 그런 견해는 단순히 직감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상당 부분 피터 피버의 리서치에 바탕을 두었다. 듀크대 정치학자인 피버는 최근 부시의 국가안보회의에 가세했다. 피버는 부시의 새 방식, 특히 ‘이라크 승리를 위한 국가 전략’의 수립을 도왔다. 전쟁의 문제점과 도전에 관한 부시의 말에 처음으로 진실성이 더해지는 듯했다. 그는 개인적인 실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라크의 치안세력 훈련이 “언제나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접근방식이 주효하는 듯했다. 부시의 지지율이 몇 주 동안 카트리나 이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듯하더니 사망자 수의 증가(그리고 이라크에서의 정치적 교착상태)로 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하지만 부시의 측근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했다.
기대를 미세하게 조정하면 여론을 주무르게 되며 현실적인 어조로 과장 없이 목적을 전달하면 장기적으로 여론조사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는 점이다.

이라크의 정치적 발전으로는 결코 자르카위의 죽음에 쏠린 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했으리라. 백악관 측근들은 대통령과 현 내각이 참석하는 캠프 데이비드 전략회의를 여러 주 동안 계획해 왔다. 바그다드 새 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한 방편이다. 새 정부가 구성된 후 첫째 주에 그 회의가 열리게 된다. 우연찮게 자르카위가 사망한 날 이라크 새 내각이 최종 임명됐으며 따라서 캠프 데이비드 회의는 이번 주 초 개최된다.
그 회의의 한 가지 비공식적인 목적은 냉철한 이라크의 군사전략 점검이다. 최근 몇 주 동안의 브리핑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관해 어두운 분석들이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에게 제시됐다. 자르카위의 사망 전에는 “저항이 갈수록 거세지며 우리는 방향을 잃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정부 관료는 말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 회의의 공식적인 하이라이트는 훨씬 밝다.
부시 내각과 이라크 새 내각 간의 그림 같은 비디오회의다. 독립적인 두 민선 정부가 협력하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미지가 대통령의 유산을 빛나게 한다. 그러나 표를 얻으려는 의원들에게는 별 득이 되지 않는다. 의원들은 자르카위의 죽음을 국내 정치에 이용할 기회를 포착했으며 부시와는 달리 자신들의 느낌을 나타낼 아주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라크 반군 사태에서 군대는 뱀의 머리를 잘라냈다”고 존 뵈너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말했다.

빌 프리스트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자르카위가 오사마 빈 라덴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빈 라덴은] 현 시점에서 약간 사담 후세인 비슷하다. 그는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고 프리스트는 말했다. “주모자…오늘날 세계의 우두머리 테러범은 제거됐다.” 민주당 측은 분명 자르카위에 관해 논평하면서 그를 살해한 군인들을 칭찬하고 마지못해 부시의 공을 인정하리라. 그러나 공화당 측은 그 승리의 순간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을 심산이다. “이라크에서 온통 나쁜 소식만 날아올 때는 전쟁 때문에 타격을 입는다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화당 상원의원의 한 선거운동 보좌관은 말했다(전략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논평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오면 [민주당 측에] 이라크 대책이 없음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기회가 생긴다.”

그 점을 강조할 목적으로 공화당 하원 원내 대표부는 이번 목요일 이라크 전쟁에 관한 이른바 원내 ‘자유’ 토론 시간을 마련했다. 군대를 향한 찬사는 물론 자르카위의 죽음을 둘러싼 환호가 터져나올 전망이다. 공화당에 등을 돌렸을지 모를 유권자들이 다시 한번 전쟁을 중심으로 뭉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아랍 이름을 가진 나쁜 테러범을 죽이면 국민은 곧바로 알아차린다”고 그 상원의원 선거운동 보좌관은 말했다. “그렇다. 유권자들은 바로 이런 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모든 공화당원이 지도부의 그런 판단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도 마이크 잡을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르카위가 죽었음에도 무력사태가 계속된다고 유권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이라크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골칫거리라고 지적할 게 뻔하다. “왜 대통령과 우리 당의 발목을 잡아온 문제에 관해 토론하려 하는가”라고 라후드는 질문했다. “올해 같은 해에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지 삼척동자라도 안다.”

With JONATHAN DARMAN and
MICHAEL HIRSH
차진우 jinc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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