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누벨 바그' 창시자 트뤼포 그의 영화만큼 매혹적인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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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트뤼포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한상준 옮김, 을유문화사, 796쪽, 3만원

이 책에 실린 프랑수아 트뤼포(1932~1984)의 생애는 그가 남긴 25편의 영화를 모두 합친 것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영화감독 이전에 독설의 평론가였고, 그 한참 전부터 '영화에 미친 놈'이었다. 어린 트뤼포가 양아버지의 신고로 소년원에 끌려 간 것도 영화가 발단이었다. 상영회를 연다며 이리저리 거짓말로 돈을 빌리고, 좀도둑질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 독학자 영화광은 22살 새파란 나이에 당대 프랑스 영화계를 싸잡아 공격하는 비평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28살에는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을 반영한 영화'400번의 구타'로 영화사에 새로운 물결(누벨 바그)이 도래했음을 알렸다.

이 책은 트뤼포가 남긴 방대한 메모.일기.편지와 주변인물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 영화광의 놀라운 열정과 좌충우돌하는 내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비평을 쓰기 위해 남의 선의에 뒤통수를 치는 뻔뻔함, 그럼에도 특정 감독에는 무한한 숭배를 바친 궤변적 태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기성영화를 맹렬히 비판했던 그는 그런 영화를 주로 소개한 배급업자의 사위가 됐고, 첫영화의 제작비도 거기서 받았다. 생모.양부와는 의절하다시피 지냈고, 대신 그의 '싸가지없음'까지 넉넉히 품어준 선배 앙드레 바쟁을 아버지로 여겼다.

정치적으로 우파에 가까웠던 그이지만 1968년에는 격렬한 시위의 선봉에 섰다. 자신같은 영화광들을 키워낸 시네마테크에서 원장 앙리 랑글르와가 쫓겨난 일 때문이다. 또 두 딸을 더없이 아꼈으면서도 새로운 연애는 평생 멈추지 않았다. 잔 모로, 카트린 드뇌브, 파니 아르당 등 당대 여배우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평론가 출신의 두 저자는 이같은 경험이 영화에 어떻게 반영됐는 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뭐니뭐니해도 평생의 연인은 영화였다. 출생의 비밀에 연연했던 그가 탐정을 시켜 생부의 집을 찾아낸 일이 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가까운 극장으로 발길을 돌린 인간이었다. 세 차례나 자살을 기도할만큼 볼품없던 청소년기부터 불같은 독서와 영화관람은 그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비평을 거쳐 창작에 이른 것도 영화광다운 '실천'이었다.

때맞춰 열리는 트뤼포 영화제는 그 실천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다. 4일~8월29일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400번의 구타''두 영국 여인과 대륙''훔친 키스''피아니스트를 쏴라' 등 9편이 소개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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