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과 정상화의 간격|대우 사태에 국민 심정 착잡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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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우조선 노사 분규가 극적 타결을 보는가 싶더니 다시 반전되어 파국 일보직전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충격을 받은게 한 두번이 아니어서 이제 더 이상 할말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그 동안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국민의 실망이 거듭돼왔다. 김우중 회장이 정부의 지원 없이는 더 이상 끌고 가지 못하겠다고 했을 때나, 부실 기업 회생을 위해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할 당시 규모와 조건을 가지고 밀고 당길 때나, 노조측이 약속을 어기고 임금 투쟁을 다시 벌일 때나 국민들의 마음은 울적했다.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과 국민적 부담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한번 폐업을 감수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여론이 있었던 것은 그런 거듭된 실망의 소산이었다.
「차라리…」라는 종말론이 나오는 것은 따지고 보면 큰 무리가 아니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탱되는 기업이 제구실을 못했을 뿐 아니라 언제 제발로 설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 부실 경영과 노동 쟁의로 수렁이 깊어지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노사간의 잠정 합의안을 보면 회사측이 상당히 양보를 한 셈이었다. 정부에서는 지원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보아 그 수용을 결정하지도 못한 터에 잠정 합의가 반전되었다.
잠정합의를 노조의 총의가 받아들이고 정부가 그 합의를 수용해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회사측이 약속한 소급 인상 분 임금의 내년 초 일시 지급이라든가, 그 밖에 노조측이 제시해 회사가 받아들인 것을 종합해도 그러하다.
잠정 합의에 따라 대우조선이 정상화된다고 해도 그것이 완전한 수습, 확고한 해결이 아닌 미봉의 수습일지 모른다는 국민적 의구심 앞에 노조는 그 합의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폐업에 대비하고, 공권력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지원계획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폐업이 불가피하다는 결의를 수없이 다짐해온 정부로서는 달리 선택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라는 심정적 종말론을 떳떳이 씻어버리려면 길은 하나밖에 없다. 노조가 총의로 잠정합의를 수락하고, 그 연후에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방법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워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노사 쌍방이 한 발짝 씩 양보하여 대타협을 보라든가, 대우조선은 살려 놓고 보아야 한다든가 하는 도덕적 호소에는 모두가 지쳐있다. 대우 식구들은 자업자득하여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이 같은 종말을 선택한 당사자들이 과연 그 결과를 냉정하게 생각했을 것이냐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폐업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될 경우 정치·사회· 경제적 파장이 크게 우려되는 만큼 정부는 이를 최소화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대량실업사태·지역경제의 희생·날벼락 맞게 될 하청 업체 문제 등 뒷일이 태산같다. 정부는 빈틈없는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잠정 합의가 뜻밖에 반전됐 듯이 파업과 폐업으로 치닫는 상황이 다시 역전될지도 모른다. 어떤 결말이 나든 이번 대우 조선 사태가 건전한 노동운동을 위한 경험과 교훈이 되어 노사평화·경제 회생에 기여하게된다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일로 자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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