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련과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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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날 우리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분규나 갈등을 보면 제도 정치권의 한계가 저절로 나타나고, 밑으로부터 제기되는 욕구를 수렴·대변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필요한 실정이다. 실정법을 무시하고 강행되는 교원노조 파동이나 최근의 수많은 시위사대에서 보듯 현재 원내 4당은 이런 문제에 거의 무력한 존재이며 기존 제도나 법도 이런 분규의 해결에 규범력있는 기준 부여를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말하자면 기존 제도나 기존 정치세력이 새로운 사회현상을 관리하는데 역부족임을 절감케 되고, 현재의 제도와 현재의 정치 세력만으로 대처할 경우 분규와 갈등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기존 제도권을 불신하면서 스스로 소외됐다고 믿는 계층과 세력들이 지지하고 신뢰를 보낼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 그들의 목소리를 입법과 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장외의 분규나 갈등을 장내에 수렴, 해결할 길이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역할을 전민련이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심정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전민련이 보이고 있는 영등포 을구 재선거 참여 움직임을 주목하고자 한다.
전민련은 전국 규모의 재야세력 통합단체인 만큼 그들이 대변하는 계층의 이익과 주장의 실현을 위해 선거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른바 진보정당의 등장을 가능케 할 여러 여건이 아직 미흡한 것은 인정되지만 최근 우리사회에서 괄목할 만큼 나타나고 있는 노동 농민운동이나 학생 지식층의 호응 등을 볼 때 1년전 한겨레당 등이 참패한 4·26총선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선거에 나서 목표와 주장을 국민 앞에 제시, 설득하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전민련으로서도 효과적이고 당당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선거에서 나올 국민평가의 결과에 따라 전술과 운동방식을 재검토하는 신축성을 가질 필요도 있다. 비록 영등포 을구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못 얻을지 모르나 첫 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므로 점진적으로 지지를 확대해 나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전민련의 출범 때부터 정당화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려하라고 권고했었다. 엄연히 정치활동을 하는 정치세력이면서도 사회운동의 형태로만 활동한다는 것은 국민 지지여하로 자기들의 활동결과를 책임진다는 자세의 결여로 보이기 쉽고 안정회구 계층과의 거리를 넓힐 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민련은 제도권의 문제와 불 합리를 지적·규탄하는 활동은 활발히 해왔지만 궁극적으로 이 나라를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전민련 나름의 청사진 제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공개적·공식적으로 이런 청사진을 내고 국민 앞에서 기존 4당과 주장을 경쟁하는 방향으로 나가주기를 바라며, 그 첫 결단으로 영등포 을구의 재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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