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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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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2002년 9월 평양 방문의 길을 튼 것은 북.일 간 비밀 교섭이다. 일본 협상 대표는 다나카 당시 외무성 아주국장. 북측 카운터파트는 'Mr. X'였다. 일본이 아직도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 막후 파이프다. Mr. X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 두 사람이 처음 머리를 맞댄 것은 그 전해 10월. 교섭 무대는 중국이었다. 양측은 1년 새 25차례 만난다. 일본에서 이를 안 사람은 다섯 명뿐이었다.

다나카가 급선무로 삼은 것은 X의 신뢰성 검증. 그 하나로 다나카는 북한이 억류 중이던 일본인 S씨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조건 없이 풀려났다. 'X는 정권 수뇌부와 닿아 있다'. 일본에서 내린 평가다. 다나카도 X에게 '실력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작전을 편다. 총리 관저를 수시로 들락거렸다(일본 신문은 총리의 동정을 매일 시간대별로 보도한다). 두 사람 간 신뢰는 북.일 정상회담을 끌어낸 모태였다. 비록 '납치' 문제로 회담의 빛은 바랬지만.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교섭에도 비선(秘線)이 움직였다. 리비아의 Mr. X는 국가원수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 2002년 가을, 그는 워싱턴과의 협상을 위해 영국 정보기관 MI5의 문을 두드린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나서게 된 이유다.

2003년 12월 16일. 미국의 Mr. X가 런던에 나타났다. 리비아.영국과의 막바지 3각 교섭을 위해서다. 로버트 조셉 백악관 확산전략 담당 국장(현 국무부 차관)이다. 그의 리비아 파트너는 정보 책임자 무사 쿠사. 98년 런던발 뉴욕행 팬암 여객기의 공중 폭파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셉은 그날 이 비행편을 예약했다가 공항에 일찍 나가 다른 팬암기를 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기막힌 인연이다. 조셉의 런던행은 당시 파월 국무장관, 럼즈펠드 국방장관한테도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 것은 그 사흘 후였다(월스트리트저널).

요즘 미국에서 북.미 협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계기다. 다자회담을 고집하는 부시 행정부가 응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리비아 모델'의 관전법을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새 질서의 돌파구는 고밀도 물밑 외교에서 나왔다고. 독재 국가일수록 Mr. X의 효용 가치는 크다.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 '악의 제국'으로 몰아붙인 소련과의 협상에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지킨 원칙이다.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