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느닷없는 용퇴 납득 안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27일 오후 돌연 사표를 낸 이주성(사진) 국세청장은 28일 출근하지 않았다. 이 청장은 이날 오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국세청 간부들과 오찬을 한 뒤 집에 머물렀다.

여야 의원들은 이 청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이날 국회 재경위에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어제 오후까지 재경위에 출석해 정상적 업무를 보던 이 청장이 느닷없이 용퇴한다고 했는데, 사퇴 배경이 정말로 납득이 안 간다"며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이 청장에게 5.31 지방선거 책임의 일단을 물었다고 하는데, 이를 분명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혜훈 의원은 "재경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을 국회로 불러 경위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은 "특별히 불법 행위나 부정으로 인해 물러난 게 아닌 상황인데, 관련자들을 불러 사퇴 배경을 묻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 사퇴 미스터리=이 청장의 사퇴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청와대와 국세청이 밝히는 공식 이유는 '건강'과 '후배를 위한 용퇴'다. 그러나 그동안 이 청장이 의욕적으로 일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라는 게 국세청 안팎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이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여당의 압력 때문에 사임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책 입안부서가 아닌 국세청이 책임을 떠맡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과천 관가의 분석이다. 부동산 정책이 문제라면 국세청이 아니라 재정경제부와 청와대가 책임져야 할 곳이라는 얘기다.

28일 국세청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삼삼오오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성 기자

가장 유력하게 나도는 원인은 '인사 갈등설'이다. 국세청 주요 간부 인사 때마다 외부 입김 때문에 이 청장이 뜻대로 인사를 못했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자존심 강한 이 청장이 사표를 냈다는 분석이다. 국세청은 그동안 몇 차례 서열을 뒤집는 발탁인사 때문에 술렁이곤 했다. 이달 초 예정됐던 지방국세청장 인사가 여태껏 미뤄진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 후임 국세청장 곧 임명될 듯=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이주성 국세청장의 사표가 수리됐다"며 "금명간 후임 인선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청장은 29일 오전 이임식을 할 예정이다.

후임 국세청장은 1~2일 안에 임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 대변인은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에서 일단 3배수 정도로 압축이 될 것"이라며 "현재로는 구체적으로 말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전군표 국세청 차장의 승진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부 출신 또는 국세청 출신 고위 관료 등을 거론하지만, 이럴 경우 국세청 내부의 동요가 심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국세청 차장 자리엔 한상율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장은 차관급이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기 때문에 후임자가 정식 임명될 때까지는 국세청은 차장 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전군표 국세청 차장은 이날 오전 국.과장급 간부회의를 열고 "후배를 위해 용퇴한 이 청장의 결단을 살려 흔들림 없이 일해 달라"며 직원들을 추슬렀다.

국세청은 또 그동안 국회 일정 등으로 미뤄졌던 지방청장과 국장급 인사를 29일 할 예정이다. 이 청장의 사퇴로 이번 인사 내용은 당초 내정됐던 것과 조금 달라질 것으로 알려졌다.

최훈.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