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日王의 지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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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 신문 27일자 조간의 사회면에는 일왕 내외의 전날 동정이 조그맣게 실렸다. 국제복지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열린 자선 만찬회에 참석했는데 후반부에 계획했던 음악회에는 자진해서 참석을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26일 새벽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생각해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이 지진으로 28일 현재 확인된 피해자는 행방불명 두 명에 부상자 5백여명. 리히터 규모 8.0(진도 6)의 강력한 지진으로 1m30㎝의 해일까지 들이닥쳤던 점을 고려하면 피해가 비교적 작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일왕은 지진대책과 같은 국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상징적' 존재다. 또 음악회는 지진으로 인한 해일 경보.주의보가 모두 해제된 오후 6시30분을 한참 지난 시간에 예정됐던 것이었다.

국정 책임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이날 일어나자마자 방재(防災)담당상으로부터 지진 대책을 보고받는 등 하루종일 비상대기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일본 지도자들의 처신은 지난 여름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1만4천여명의 국민이 폭염으로 사망하는 와중에 3주간의 휴가를 즐긴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태풍이 상륙하는 날 뮤지컬을 관람했다고 해서 비난이 일자 한 장관이 나서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이 올 때 오페라를 보면 안됩니까"라고 옹호했다고 한다.

국가.개인에 따라 행동양식과 주장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난 대비 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잘 돼 있다는 일본의 국가 지도자는 조그만 재해에서도 국민과 함께 마음을 졸이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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