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몰랐던 언니 찾았다···47년 만에 만난 자매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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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어깨동무하고 웃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어깨동무하고 웃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지난달 이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컴퓨터로 이메일을 열자마자 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메일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있었죠. 제 여동생을 찾았다는 내용이었어요. 평생 제 가족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72년 미국·벨기에로 각각 입양 보내졌던 자매 #47년간 각자 삶 살아오다 우연한 기회로 상봉 #"한국 친부모 찾고 싶다…한 번도 원망은 안 해"

18일 오전 대구 북구 대구역 역사에 두 중년 여성이 팔짱을 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언뜻 평범한 한국인처럼 보였지만 둘은 영어를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크리스틴 페늘(Christine Pennell·50)과 벨기에에서 온 킴 헬렌(Kim Haelen·48)이다.

둘은 자매다. 언니는 1969년, 동생은 7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3주에 불과했다. 언니는 71년 11월 3일 대구 동구 반야월역에 버려졌고, 동생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71년 12월 3일 대구역 광장에 버려졌다. 각자 자신에게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지난 1971년 각각 부모에게 버려진 채 발견된 언니 크리스틴(왼쪽)과 동생 킴이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 대구=김정석기자

지난 1971년 각각 부모에게 버려진 채 발견된 언니 크리스틴(왼쪽)과 동생 킴이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 대구=김정석기자

언니는 고아원인 일심원으로, 동생은 백백합보육원으로 각각 옮겨졌다. 이윽고 둘은 외국인에게 입양돼 72년 9~10월 한 달 간격으로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47년을 서로를 모른 채 살았다. 두 번째 조국에서 결혼도 하고 각자 아이 셋을 낳아 가정을 꾸렸다. 언니 크리스틴은 법률사무소에서, 동생 킴은 특수교육자로 워킹맘 생활을 하고 있다.

자매가 47년 만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노력과 운이 만든 결과다. 신장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간 동생 킴이 유전자(DNA) 검사를 실시하면서 기적이 이뤄졌다. 앞서 언니 크리스틴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DNA 정보를 등록해 둔 상태였다. 자신의 부모를 직접 찾을 순 없더라도 친·인척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동생이 DNA 검사를 하면서 일치하는 DNA가 파악됐다.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마주보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마주보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왼쪽)과 동생 킴이 웃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왼쪽)과 동생 킴이 웃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자매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크리스틴은 곧장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 동생에게 연락했다. 둘은 서로 생김새가 닮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생선을 싫어하는 식성도 닮았고, 춤을 즐겨 추는 취미도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둘은 지난 16일 대구에서 극적인 상봉을 했다. 과거 킴이 버려졌던 장소인 대구역에서 만났다. 킴은 "플랫폼에 내리니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날 보지 못했다. 나는 가방을 집어 던지고 달려갔다. 언니가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18일에도 대구역을 찾은 자매는 역사에서 진행 중인 대구의 옛 모습 사진 전시회를 감상하고,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춤을 췄다.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춤을 추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춤을 추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전시된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18일 47년 만에 다시 만난 언니 크리스틴(오른쪽)과 동생 킴이 대구역 역사에서 전시된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자매는 앞으로 한국에 있을 부모를 찾을 계획이다. 해외 입양인을 돕는 한국과 미국 여성들의 모임 '배냇' 관계자는 "70년대 한국에선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자녀를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현재 이들의 부모가 살아있을 확률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린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만나서 보살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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