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들에 짓밟힌 여행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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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내 가슴과 배를 걷어차던 사복전경의 흰 운동화가 자꾸 눈에 어른거려 가위눌리곤 해요』
12일 오후3시 국립경찰병원 1동 303호 병실.
시위진압 전경들에 의해 전신 타박상에 턱뼈까지 흔들리는 중상을 입고 저미는 고통에 입술만 앙다물고 있는 김연희양(21·은행원)은 그날의 끔찍한 장면을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다는듯 두 눈을 꼭 감았다.
『너무 불쌍했어요. 어떻게 한학생을 여러 전경이 그토록 잔인하게 때릴수가…』
김양은 지난 10일 오후5시쯤 종로2가 구화신백화점앞에서 시위학생 한명을 전경 10여명이 무참히 구타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파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고 했다.
『사지를 모두 부러뜨려 버려』
그 학생을 난타하던 한 전경이 방패를 들어 학생의 머리를 내려찍는 순간 김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번개처럼 한 사복 전경이 김양의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해, 이 ×아』라고 욱박지르며 주먹으로 김양의 얼굴·가슴을 내려치고 발로 배를 걷어차 쓰러뜨렸다고 했다.
『살려주세요』라는 김양의 호소가 채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10여명의 전경이 몰려와 쓰러진 김양을 짓밟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상을 나와 어려운 집안살림을 도맡아 꾸려온 김양은 이날 만난 공권력이 「시민의 파수꾼」은 커녕 폭력 그 자체였다고 분개한다.
종로경찰서 측은 『김양이 주장하는 내용을 확인, 당사자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권력에 의해 심어진 무고한 시민의 정신적·신체적 상처는 쉽게 아물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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