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우호 금가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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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규모 유혈 참사로 막을 내린 이번 중국 사태로 20년 가까이 지속돼온 미-중국간의 우호적인 관계가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닉슨」미 행정부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에 실질적 주역 역할을 했던「헨리·키신저」전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지 기고 문에서 이번 사태로 양국관계에 금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번 북경 사태는 미국의 정치적 성숙도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11일자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키신저」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중국과 가장 친한 우방들에 있어서 조차 이번 천안문 광장의 대 학살 극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번 참사는 인간적 측면에서의 비극적 결과 못지 않게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올 만한 사건이며 미국의 외교 정책에도 중대한 도전으로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의 미-중국관계를 점쳐 볼 때 중국 내에서 반정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는 경우 미국은 양국 관계를 냉각시키거나 해체시킬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정치·전략적 측면에서 양국 관계가 거의 2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가 경제적 근대화 과정에서 생겨난 불만세력에 정치적 참여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정치적 화해를 시도하는 동시에 경제적 현대화 작업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미국이 바란다고 그렇게 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번 중국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외교정책은 그런 경우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국토의 광대한 규모와 거대하고 다양한 인구, 국민들의 자질 등에 비추어 중국은 지구 전체, 특히 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빠져서는 안될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요사태는「고르바초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외교술로는 이룩할 수 없는 것을 소련에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다. 즉 소련의 대 서방전략에 있어 선택의 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중국이 국내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한 인도지나에 대한 베트남의 야욕은 부활할 것이다. 실제로 캄보디아의 장래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들간의 협상이 이번 사태로 전보다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평양에 대한 중국의 억지력은 약화될 것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대외정책상의 우선 순위를 재검토 하게될 것이다.
중국이 국제적 결정인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외적인「힘」이며, 근대화와 내부 결속을 위해 필요한 것은「선견지명」과「내적 화해」다. 어떻든 이번 사태로 미국은 외교정책상 심각한 딜레마에 처해있다.
미국은 미국 나름의 가치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기준은 모든 경우에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하며 다른 나라에 의해서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외부의 간섭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중국 지도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59년 바로 이 문제로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했고 12년간이나 불안한 고립정책을 지속 해왔다.
이런 점에서「부시」대통령은 뛰어난 수완을 보여온 것으로 여겨진다. 미 행정부는 중국의 주권과 근대화에 대한미국의 지대한 관심에 일말의 의혹이라도 불러 일으킬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처럼 초당적인 외교정책이 필요한 시점은 없었다. 모든 정치인들은 이번 사태를 논쟁거리로 만들어 점수를 따보겠다는 유혹을 포기하고 「국익」에 대한 일치된 정의 아래 결속해야 한다.【워싱턴 포스트=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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