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뛰쳐나온 '금요일밤의 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어두컴컴한 지하의 게릴라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지난주 금요일인 26일, 홍대 앞 거리는 춤과 음악이 흘러넘치는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됐다.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마다 벌어지던 '클럽 데이'(1만5천원짜리 티켓 하나로 홍대부근 10여개의 클럽을 자유롭게 오가며 즐길 수 있는 것)가 야외 행사와 접목, '로드 클럽 페스티벌'이란 이벤트로 탈바꿈한 것이다. 차량이 통제된 가을밤의 거리에서 클러버(clubber)들은 밤새도록 젊음을 만끽했다.

*** "야한 밤 되세요"

홍대 앞 주차장에 임시로 설치된 라이브 무대 주변은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부터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가수 '빅 마마'의 공연 땐 길거리 인파는 이미 2천여명을 웃돌았다.

뒤이어 나온 서울시 정두언 정무 부시장의 인사말. 무슨 '꼰대'같은 소리나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도 학창시절 밴드에서 한가락 했다면 한 사람"이라며 "마음껏 노시고, 오늘 야한 밤 되세요"라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젊은이들의 일탈이 공인(?) 받는 순간이랄까.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은 무심코 주위를 지나가던 행인들을 붙잡을 만큼 강렬했다. 퓨전 국악 뮤지션인 최소리 밴드는 몽환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메탈 그룹 미르의 공연 땐 객석은 거칠게 뒤흔들어대는 헤드 뱅잉으로 장관을 이뤘다.

같은 시간 길 건너편 장소에선 정적인 공간이 마련됐다. 마치 벼룩시장을 연상시키듯 아기자기한 액세서리가 판매되는 클럽 마켓이 열려 오가는 여심을 붙잡았고 문신작품전.거리영상전도 함께 열렸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공간문화센터 최정한 대표는 "내년 5월 두번째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다.독특한 홍대만의 문화 콘텐츠를 살려 대형 문화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길거리 레이브 파티

라이브 무대에서 2백여m 정도 떨어진 곳, 트럭 위에 테크노 DJ가 올라서자 주변은 곧바로 뜨거운 레이브 파티장으로 변모했다. 춤깨나 춘다는 춤꾼들이 모여들어 도로에는 어느새 1천여명이 흥청거렸다. 그들의 발놀림이, 흐느적거리는 허리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

춤은 리듬이다. 리듬감이란 운동 신경처럼 태생적이다. 그래서 춤꾼이란 본래 만들어지기보다 타고난다는 말이 맞다. 그런데 춤이 지하가 아닌 바깥으로 나오자 춤은 '일상'이 되고 '놀이'가 됐다. 사람들은 춤을 춘다기 보다 가볍게 흔들어대며 그 여유로움을 즐겼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오는 걸음걸이에도 리듬을 실렸다. 길을 가던 넥타이 차림의 아저씨들도, 40대 아줌마들도 자연스럽게 융화됐다. 매니어들만의 클럽 문화가 바로 바깥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회사원인 김희진(28)씨는 "길거리에서 이렇게 춤을 출 수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며 순간의 일탈을 즐겼다.

*** 새벽까지 젊음 발산

자정이 지나갈 무렵 젊은이들은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춤판에서 힙합 키드들은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여성들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주위를 유혹했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음악 위주로 틀어대 가장 매니어적이라는 말을 듣는 클럽 '조커 레드'마저도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주최측이 집계한 이날 클럽 열두곳의 참가 인원은 6천5백여명. 몇 십평 안팎의 클럽 하나에 무려 5백명 넘는 사람들이 드나든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협소함을 즐기는 듯했다. 좁을수록 유연해졌고, 숨이 차올수록 밀착해갔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교포 여성 은미 포스트마(29)씨는 "한국에 온 6개월 중 오늘처럼 신나는 날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벌써 29회째를 맞는 클럽 데이 행사는 2년전 초창기 때만 해도 한산하기만 했다. 지난해초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여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성기완씨는 "월드컵의 광장 문화를 경험한 젊은이들에게 클럽은 또 다른 자기 욕구를 발산시키는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젊은이들은 새벽 여섯시가 돼서야 하나 둘씩 클럽을 빠져나갔다.

첫번째 거리 축제는 물론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소음을 호소하는 민원이 빗발쳤다거나 다소 공간이 좁고 산만해 더 신나게 뛰어다닐 수 없었다는 점 등은 지역주민의 이해와 동의가 클럽 페스티벌 정착에 필수적임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곳곳에서 보이는 호객꾼의 모습과 너저분한 뒷골목의 풍경에선 홍대에도 상업주의와 퇴폐의 음습함이 스며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클럽 매니어들에겐 만끽한 자유를 넘어서 또 다른 무언가를 선택해야 될 시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