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사흘 앞둔 이명박 서울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명박(사진) 서울시장이 26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이 시장은 ㈜신원 등 입주 기업 세 곳의 공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 시장은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관리위원회를 방문해 "개성공단이 분단 상황에서 남북 간의 새로운 (경협) 모델이 되고 있다"며 "남북이 함께 노력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2년 만에 이 수준에 도달한 것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언어와 역사를 공유했기에 가능했다"며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시장이 개성에 머문 시간은 불과 4시간 남짓이다. 그러나 이 시장 측이 부여하는 의미는 적지 않다. 서울에 본사를 둔 개성공단 입주 기업과 북한 당국이 초청하는 형식을 밟았지만 이 시장 본인이 적극적이었다.

이 시장은 30일 퇴임한다. 퇴임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서 대미를 장식할 카드로 개성공단 방문을 선택한 것이다.

이 시장으로선 북한 방문 자체가 처음이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통일에 대비한 북한 경제 건설 방안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기 위한 방문"이라고 했다. 이 시장은 퇴임 이후 대선 과정에서 국민 앞에 내놓을 분야별 국가 비전 제시를 위한 테마별 지방.해외 방문을 구상 중이다.

이번 개성공단 방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그동안 "남한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북한 경제가 최소한 1인당 3000달러에 도달해야 통일의 기반이 성숙할 수 있다. 그래야 통일이 양쪽 모두에 상승 효과가 있다"는 통일관을 피력해 왔다.

이른바 '3.3 통일론'이다. 북한의 경제 부흥을 통일의 선결 조건으로 보고, 철저히 경제적 현실에 바탕을 뒀다는 점에서 CEO 출신인 이 시장다운 접근법이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의 개성공단 방문은 남북 경협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통일에 대비한 대북 경제 구상의 틀을 짜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이 시장은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나 손학규 경기도지사에 비해 대북문제에 대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시절인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다. 손 지사도 남북 벼농사 합작사업과 북한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 등 활발한 대북사업을 펼치며 북한 관련 이슈를 선점해 왔다. 반면 이 시장은 대북 관련 이슈를 주도하지 못했고, 반대로 강한 보수색만 부각돼 왔다.

이 시장의 이날 개성 방문엔 대북 문제에 있어서의 경직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대선 후보로서의 사실상 첫 행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시장은 서울로 돌아와 "단순히 인건비만 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며 "인터넷이 안 되고, 제품과 사람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점, 금융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불편함은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이 시장은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개성에 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남북 간 긴장, 국제적 긴장이 해소되느냐에 개성공단의 성공이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북한 정권 차원에서의 평화 공존 의지가 개성공단 성패를 가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범단지 입주 대상 15개 기업 가운데 13개 기업이 현재 가동 중이다. 선발 기업이 잘되는지를 보고 다른 기업들이 들어갈지를 결정할 것"이라며 "(남한 정부가) 밀고 나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27일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 남한 정착의 애로사항 등을 청취키로 했다.

개성=김상우 기자, 서승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