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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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모두들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홀로 마시는 코피는 늘 쫓기는 긴장된 생활 속에 잠시나마 여유를 갖게 해준다.
더욱이 국제회의의 성패를가름한다고 볼 수 있는 큰일을 치르고 마시는 이 새벽 코피는 쌓인 피로를 잊고 내일을 향해 나가는 활력소가 돼준다.
이번 제19차 국제간호협의회 총회는 주최자와 참가자 거의 전부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이 컸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국제행사의 주최측은 물론 참가자 대부분이 남성들이어서 이번에 청일점 남성대표가 폐회서 연단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던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1백4개국 7천여명이 참가한 「간호사 올림픽」에서 매끄러운 진행, 연사들의 전문 분야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발표도 놀라웠지만 나를 가장 감격(?)시킨 것은 바로 전체 참석자들이었다.
사실상 대부분 국제회의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쇼핑 또는 관광등으로 청중수가 줄어들게 마련이어서 마지막날최종 분과위원회의를 통역하려면 거의 텅빈 회의실을 내려다 보며 통역을 해야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열기」가 가신 상태에서 별반응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니 나자신도 맥이 빠져버린다.
그런데 이번 간호협의회총회는 달랐다. 마지막순간까지 회의장이 청중들로 꽉찬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다. 이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어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한 간호사들의 열의에 더욱 힘을 얻어 마지막까지 피곤을 잊은채 통역에 임할수 있었다. 더운 날씨만큼이나 높았던 참석자들의 열기로 연사 배정을 받지 못한 이들까지 『준비해온 것을 얘기하겠다』며 나서는통에 예정에 없는 통역까지 덤으로 주어져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경험한 이제까지의 어떤 국제회의보다도 알찬 화의란 점에서 가슴이 뿌듯했다.
바로 이런게 「여성의 저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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