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회의 합의 실현 무엇이 문제인가|원점서 맴도는 전씨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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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하순 4당 중진회의에서 1회 공개증언키로 합의한 전두환.·최규하 전대통령의 국회증언 문제가 당사자들과의 절충과정에서 난항을 겪고있다.
여기에 정호용의원 등 5공 핵심인사 처리문제에도 평민당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영수회담을 통한 타결전망이 불투명해 5공청산 작업이 상당히 지연될 것 같다.
정부와 민정당은 정호용씨 문제는 처음부터 협상대상에서 제쳐 놓았다. 본인이 한사코 반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잘못 다루다가는 광주사태에 대해 대세에 밀려 마지못해 양비론을 허용하고있는 군을 자극할 우려가 있고 나아가 노태우 대통령의 근거지인 대구·경북에서 조차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는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민당이 정씨 인책을 결사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공화당이 어느 단계에서 방관하거나 제3자적 입장에 서주면 소리는 다소 나겠지만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여권은 생각하고 있다.
전 전대통령 증언문제는 본인이 필요하다면 응한다는 뜻을 비쳤고 어떤 형태로든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는 것이 국민적 여론이기도 해서 비교적 곡절을 겪더라도 끝내는 성사되지 않겠느냐고 비교적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4당 합의에 바탕을 둔 민정당의 전씨에 대한 타진은 초장부터 빗나가 정부·여당이 내심 당황하고있다.
최 전대통령이 계속 증언을 완강히 거부하더라도 전 전대통령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부서지는 조짐을 보이고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민정당은 사실 중진회의의 합의에 도달하기전 전씨측과 긴밀한 협의를 벌이지 않았다.
이는 민정당이 안현태 전대통령 경호실장·이양우 변호사 등 측근을 통한 전씨의 의중을 너무 과신했던 탓도 있다.
전씨는 그동안 5공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증언에 응할 용의가 있으며 그 증언은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고 매듭짓는 최후의 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파악됐고 민정당은 그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야당과 절충에 임했던 것이다.
민정당은 야당과 전·최씨의 1회 공개증언을 합의한 후 비교적 낙관적인 자세로 백담사를 상대로 막후절충에 들어갔다.
노태우 대통령은 경호실 고위간부를 백담사에 보내 친서를 전달했다.
이는 작년 11월 전씨가 백담사행을 최종결심하기 앞서 노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후 근 6개월만의 관심표명이었다.
친서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증언문제에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고 전씨의 백담사생활에 대한 위로와 그동안 무심했던데 대한 유감 및 안부가 핵심 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노대통령은 두 사람을 모두 잘 아는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및 김장환 목사(극동방송이사장)등 정치색이 없는 종교인들을 통해 양쪽의 의사를 교환했으며 지난주에는 김윤환 민정 전 총무를 보내 증언문제 등 정치현안을 조심스럽게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앞서 채문식 민정당고문도 다녀왔지만 중재소임을 띤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화는 의외로 청와대와 백담사 사이에 골이 깊음을 보여주었고 국회증언문제에 관해서도 쉽게 접합하기 어려운 시각차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선 전 전대통령은 노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인 「섭섭함」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이 국회증언에 섣불리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노대통령과 민정당의 문제해결능력을 별로 신뢰하고 있지 않음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나 백담사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상기 시키면서 정부·여당이 그때그때 여론에 영합하는 국면모면요구를 했을 뿐 책임있게 일을 처리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는 또 증언에 나서면 대답해야할 핵심질문이 ▲정치자금내역 ▲광주사태 발포명령여부 ▲12·12와 5·17의 배경추궁 등일텐데 그런 질문은 긍정적 답변을 해도, 부정적 답변을 해도 모두 문제를 잠재우기 보다는 증폭·악화시켜 문제의 매듭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정치자금과 12·12, 5·17은 바로 노대통령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결국 노정권 타도를 부르짖는 세력들에 이용되거나 현정치판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지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민정당이 야당과 철저히 질문시나리오를 짠다고 하지만 그간 청문회나 여소야대 국회운영상을 보면 민정당의 능력으로 과연 야당에 사전보장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의구심도 갖고있다.
백담사측의 이 같은 문제제기에 노대통령과 민정당이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는 현실이 전씨의 증언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이런 사정을 감안, 노대통령은 전씨가 만나고 싶어하는 노대통령의 측근 박철언 보좌관을 곧 백담사에 보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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