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 기지국 전자파 탓 … 두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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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강남구 대치3동에 사는 김경섭(29)씨는 1년여 전부터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려 왔다. 김씨는 자신의 증세가 자택에서 10m 정도 떨어진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김씨는 "2년 전 기지국이 설치된 뒤 인근에서 두통.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이 생겨났다"며 "나도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주민 300명의 서명을 받아 피해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는 진정을 정보통신부와 강남구청에 내기로 했다.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법정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이동통신 기지국 전자파 유해성 논란이 법정 분쟁으로 간 적은 아직 없다.

이동통신 기지국 전자파의 유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정통부에 접수된 기지국 전자파 피해 관련 민원은 50여 건에 이른다. 3월 강원도 강릉에선 이동통신 기지국이 설치된 뒤 두통과 수면장애 증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종양이 악화됐다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통부와 이동통신사는 주민들의 민원을 무조건 수용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통부 이정구 전파방송사업팀장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기지국 전자파에 대한 유해성을 규명한 바 없고 유해성 입증 없이 기지국 설치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도 "기지국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강도는 헤어드라이어나 전기면도기만도 못하다"며 "지금 제기되는 민원들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동통신 기지국의 전자파 강도는 3.17~4.67V/m(전자파 측정 단위)이며, 헤어드라이어는 92.9~101.8V/m이다.

정통부는 기지국 관련 민원이 계속 제기되는 점을 감안, 2010년까지 200억여원을 투입해 기지국 전자파의 유해성과 예방책을 집중 연구할 방침이다.

◆ 유해성 연구 더 해야=기지국과 조금만 떨어져도 전자파의 세기는 크게 낮아지기 때문에 인체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이동통신사가 기지국을 설치할 때는 정통부의 전자파 인체 보호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연세대 의대 김덕원 교수는 "기지국의 전자파 세기가 가전제품보다 낮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연구가 덜 된 단계"라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도 "기지국 전자파의 영향은 지형, 건물 밀집도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히 전자파 세기만 놓고 인체 유해 여부를 판가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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