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시위」자리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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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해 광주의 5월은 이철규 군 변사사건이란 변수가 겹쳤음에도 극히 일부의 예외를 빼곤 폭력 없는 집회·시위기간을 기록했다. 특히 80년 이후 처음으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없는 5월을 실현시켜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화의 진전을 확인케 했다.
6일「민족해방운동사 그림전」을 시작으로 16일까지 계속된 「5월제」와17일부터 시작돼 27일의「광주항쟁 계승 및 고 이철규 군 고문살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 시민궐기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추모제」기간 동안 광주에서는 모두 28차례의 크고 작은 집회(5월제 14종·추모제 14종)가 열려 50여만 명의 시민·학생(경찰 공식집계 26만4천명) 이 시위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도청 앞 광장에서 5만 여명이 참가한 16일 집회에서 시민·학생과 경찰의 몸싸움으로 시민·학생60명, 경찰26명이 다친 것과 22일 집회 때의 시민·학생1백20명, 경찰1백56명 부상, 그리고 23일 집회에서 시민·학생50명, 경찰81명이 다친 것(비공식집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13만 명의 대군중이 모인 18일 저녁의 도청 앞 「5·18행사」에서는 단 한 건의 충돌사고도 없이 평화적으로 시위를 이끄는 성숙한 면모를 과시했다.
세 차례의 충돌 때도 화염병과 최루탄은 없었으며 일부 시위대와 경찰이 각목과 돌멩이·모래주머니 등을 던지는 사태가 있었지만 서로의 자제로 더 큰 피해는 없었다.
전민련·전대협·남대협, 그리고 5·18 유관단체23개 등이 주도한 「5월제」와 추모제」가 이처럼 평화적으로 끝 날수 있었던 것은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고 수습방안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폭넓은 지지와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평화적 시위가 필수적이며 더 이상의 폭력은 지금까지 평가된 항쟁의 의미마저 퇴색시킨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경찰이 「평화적 시위는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워 17, 18일 집회와 27일 집회 등 일부집회를 공식허가 하거나 사실상 묵인하는 유화정책을 편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정부당국의 자세변화는 최인기 광주시장과 송언종 전남지사가 처음으로 망월동 희생자묘역을 참배한 사실에서도 극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광주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광주시민들의 가슴속 응어리는 풀리기보다 더욱 굳어지는 현상도 없지 않았다.
노래극·마당극·마당굿·서화전·사진전·걸개그림전·대동한마당·학생백일장·걷기대회·음악제 등 종합행사장마다 대학생·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어 대만원을 이룬 것도 그 같은 응어리를 반증하는 현상으로 보여졌다. 대부분 행사가 무료였지만 참가자들은 따로 마련된 성금함에 성금을 넣거나 기념품·책자를 사주는 방법으로 열성적으로 행사를 지원하는 모습이었다.
80년 5·l8당시 그랬던 것처럼 마치 「광주는 하나」였다.
「5월제」마지막날인 16일 광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동굿 에서 『9년 전 우리가 당한 것은 처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명로동 「5·18기념사업준비위원장」의 인사말에 1만여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터뜨리기도 했다.
끔찍했던 그날을 이제 명예와 긍지로 돌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은 더디지만 상처가 아무는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의 해결 없이 새 역사의 순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광주문제는 더 이상 광주의 지역문제로 왜곡되거나 해결이 지연되어서는 안될 일이다.【광주=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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