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방어책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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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방어에 필수적인 사항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일부 의결권 제한 주식' 도입이 추진된다. 회사가 주주의 의사를 묻지 않고 강제로 주식을 사들이거나 주식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강제 전환.상환부 주식'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을 주기 위해서다.

정부는 23일 한명숙 총리 주재로 규제 개혁 장관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기업공개 및 시장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우선 일부 의결권 제한 주식, 강제 전환.상환부 주식 발행이 가능하도록 상법을 개정키로 했다. 또 최저 액면가(100원)와 관계없이 발행 때마다 발행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무액면 주식도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러나 재계가 강력히 요구해 온 '황금주(1주만으로도 적대적 M&A 세력의 요구를 거부할 권한을 가진 주식)' 등의 신종 주식은 시장의 투명성 확보가 더 필요하다며 당장 허용하지 않고 장기 과제로 넘기기로 했다.

강제 전환 주식은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발행된 뒤 기업이 원할 때 의결권 없는 우선주 등으로 강제로 바꿀 수 있는 주식을 말한다. 강제 상환 주식은 기업이 필요할 때 현금을 주고 강제로 되살 수 있는 조건을 달아 발행하는 주식이다. 이런 주식은 제약 조건 때문에 시장에서 보통주보다 낮은 가격에 발행되고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면서도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이 생기면 상대방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기업들이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이를 감안해 법무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 작업에 경영권 방어 수단을 포함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공시 의무 위반 기업에 행정제재를 할 수 있는 시효를 5년 이내의 사건으로 제한키로 했다. 지금은 공시 의무 위반에 대한 행정제재의 시효가 없다. 상장사가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자사주를 처분하는 경우 판매 가격의 범위를 넓혀주기로 했다. 현재는 당일 종가 또는 그보다 0.2% 낮은 가격 범위 안에서만 팔 수 있다.

분기배당 제도와 결산 실적 수시공시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재무제표 승인을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가능하도록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다만 이사회 의결 이전에 외부 감사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보완책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확정된 방안에 대해 다음달 중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한 뒤 올 하반기에 관련 법령을 개정키로 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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