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음악성 감동적˝|「모스크바 솔리스트 앙상블」연주를 듣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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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을 대표하는 실내악단인 모스크바 솔리스트 앙상블이 지난 26,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가졌다.
연주를 듣기 전과 들은 후의 내 마음이 바뀌었다. 듣기 전의 나는 평상시 같이 한사람의 평론가였다·
소련음악이 한국에 어떤 식으로 수용되어야하는가 라는 질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연주를 들은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어릴 때로 돌아가 버렸다. 단순한 음악 애호가가 됐다. 기가 완전히 죽은 채로 음악에 취해버렸다. 기가 죽은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의 고귀성이 때묻지 않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참 잘 한다』라는 생각과 『음악이라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취했다.
예술은 진공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탁한 사회·문화적 공기 안에서 태어난다. 이 공기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사회적 힘으로 둔갑할 때는 나쁜 것이 된다.
예술가의 개인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 않을 때라든가, 음악의 고귀성을 인정하는 가치관을 짓밟을 때도 나쁜 것이 된다.
잘된 음악, 옳은 음악을 보호하려는 힘으로 작용할 때라든가, 나쁜 사회적 힘에 저항하는 방식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힘으로 작용할 때는 좋은 것이 된다. 모스크바 솔리스트 앙상블 좋은 공기의 생성만을 위해서 있는 것 같았다.
솜같이 부드러운, 참으로 잘 어울리는 현의 소리는 조화의 극치를 이루었다. 현악기의 앙상블에서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기한 것이 또 있었다. 현악기들로부터 목관과 금관의 소리, 심지어는 유연한 타악기의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했다. 현악기로부터 관현악음색이 창출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그들은 음색을 정말 다양하게 구가하고 있었다. 다이내믹한 조절은 절묘했고 철저하게 절제된 표현법은 긴장감을 배증시켰다.
「유리·바슈메트」는 솔리스트로서, 그리고 지휘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냥 사는 것」으로 머무르지 말고 「음악적 삶의 형식 안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그는 우리에게 말이 아닌 음으로 역설했다.
내가 들은 곡의 연주 모두 좋았지만 특히 나는 소련작곡가 「슈니트케」의 『실내악을 위한 트리오소나타』가 좋았다.
내가 여태껏 들어본 어떤 곡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를 닮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난생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낯설지 않게 하는 그의 음악이 나는 좋았다.
음악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소련이나 한국 모두에 예외 일 수 없다. 그러나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동일시하는 사회적 힘이 작용하는 한 음악은 사회 안에서 살수 없다. 소련에서 음악이 살고 있는 방식을 이번 연주회를 계기로 연구해 볼필요가 있을 것 같다·이강숙 <음악평론가·서울대 음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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