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6·25 '남침 유도설' 조목조목 반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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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전쟁-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정병준 지음, 돌베개, 816쪽, 3만8000원

한국전쟁은 끝났어도 개전(開戰) 책임을 둘러싼 '이념 전쟁'은 냉전 시대 내내 계속됐다.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이념 전쟁은 1990년대 들어 공개된 구 소련 비밀문서를 통해 점차 남침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좌파 진영 일부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 '남침 유도설'이다. 말 그대로 북이 남침을 하게끔 남한이 유도했다는 것이고, 이를 뒷받침한 대표적인 근거가 '해주 진공설'이다.

남한이 38선 이북에 있던 황해도 해주를 공격한 이후에 북이 대규모 공격으로 대응했다는 주장이다. 해주 진공설이나 남침 유도설은 결국 북침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북침설 혹은 남침 유도설을 학계에서는 전통적인 시각(소련.북한에 의한 남침)과 다르게 본다는 뜻에서 '수정주의'라고 부른다. 브루스 커밍스(미 시카고대)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수정주의의 대표작이다.

정병준(41.한국현대사) 교수의 신간 '한국전쟁'은 커밍스의 책과 비교해 볼 만하다. 우선 정 교수의 책이 나옴으로써 이제 커밍스 류의 남침 유도설은 설 자리가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해주 진공설은 한국전쟁 발발 몇 달 전인 1950년 3월 육군본부가 마련한 '작전명령 제38호'에 따른 방어계획의 일환이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냈기 때문이다.

6월25일 육군본부는 문제의 해주 공격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 명령은 6월25일 이른 새벽이 아닌 오전에 내려졌다. 북한의 공격이 시작된 뒤에 나온 방어계획임을 입증한 것이다. 게다가 실제 해주 공격은 없었다. "공격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력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국내 역사학 전공자가 쓴 본격적인 첫 한국전쟁 연구서로 꼽을만하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의 고증을 통해 남북한 병력 규모 등을 새로 밝혀냈다. 커밍스가 책을 쓸 땐 볼 수 없었던 구 소련 자료와 커밍스가 잘 해독할 수 없었던 북한의 한글 자료 원본 등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은 남침을 몰랐던 것일까. 저자는 "미국 정보당국자들의 허를 찌르는 기습공격"이라며 "소련이 미국을 향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전쟁 징후를 알리는 주요 정보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정보의 실패'였다"고 분석했다.

한국전쟁 관련 또 다른 논점은 내전이냐 국제전이냐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48년부터 50년 전쟁 발발까지 38선을 놓고 벌어진 잦은 충돌을 "전쟁의 형성 과정"이라 명명하며 특별히 주목했다. 이는 커밍스 류의 내전적 시각과 유사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내전으로만 볼 수는 없다"며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38선 설정 및 분단, 그리고 전쟁 중의 군사전략.작전술.무기와 남북한의 병력 등을 고려할 때 국제전의 성격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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