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9월의 책 선정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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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건 가운데 가장 '평화'에 가까운 것은? 책이다. 한 종의 책은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그것뿐이며 그 자체가 한 세계다. 책은 남의 자리를 탐하지 않아 다툼이 없고 퍼가면 퍼갈수록 더 커질 뿐 싸움은 없다.

책에 순서를 매기는 게 자칫 그 평화를 흔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자의 관심에 바탕해 좋은 책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면 '평화의 질서'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행복한 책읽기'에 소개된 책을 '평화의 질서'를 따라 살펴보자.

가장 많은 독자 서평을 받은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자주 다니면서도 데면데면했던 산을 더 잘 알게 되었다'(chungsan54)는 독자에서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josephin2)는 독자까지, 산에서 부쳐 온 야생초 편지격인 이 책이 주는 울림이 무척 크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는 요즘 독자들의 관심사를 가늠케 한다. 비슷한 흐름인 '리버 타운'(피터 헤슬러, 눌와)에 대한 관심도 높았던 것을 보면,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란 코드에 독자들이 점점 더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바보 이반의…'의 시골동네 생활일 것 같은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박형진, 디새집)도 많은 독자의 관심을 모았다. '이 책 아니면 오늘날 변산 사는 서금용이 하루에 막걸리 백 세잔을 마셨는지, 변산 지게대학 입학생의 사연이 무엇인지 후일 어찌 알 것인가'(lefty5).

많은 독자 서평을 받은 또 한권의 책 '애덤 스미스 구하기'(조너선 와이트, 생각의 나무)는 보기 드문, 그리고 재미도 갖춘 경제소설이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저자의 한 논문 제목처럼 '시장만능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시장의 기본으로 정의와 도덕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korihime)는 독자가 많았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엔론, 월드컴 등 세계 최고 기업으로 숭앙받던 기업들이 경영진의 부정과 부패로 몰락하고, 신자유주의의.시장만능주의가 더 이상 현실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환경 위기는 생태적 삶으로, 경제 위기는 정의와 도덕성을 강조한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재해석으로.

정진욱 / 교보문고 인터넷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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