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당 다자협상 일단 성공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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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 중진회의가 9차례의 회의 끝에 지자제 일정·전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 등 굵직한 정치현안을 해결하고 26일 사실상 막을 내렸다.
광주 및 5공 핵심인사의 처리와 의보법·농가부채 등 몇몇의 민생관련사안들에 대해서는 끝내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하고 청와대영수회담으로 이월시켰으나 이만한 결과를 얻어낸 것은 예상 밖이라 할 수 있다.
사실 6공화국출범이후 처음 가져본 4당 구조하에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유야무야 식으로 정치권이 1년 이상을 허송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과도기의 상황에다 정치권의 이 같은 무능이 겹쳐 최근과 같은 위기정국 조성됐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번 중진회의가 이 만큼의 결과를 그나마 얻어낼 수 있었던 것도『정치권이 이 난국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국민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당하는 것은 물론 정치권이 공멸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들이 작용해 서로 의자를 바싹 다가앉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국·민생법안 미결>
이번 회의의 성과는 합의한 개별사안의 중요성에도 있으나 합의를 도출해 내기까지 타협의 과정에서 보여준 각 당의 태도가 우리정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데 더 있다고 하겠다.
우선 6공정치를 괴롭혀왔던 5공 청산 문제가 대단원의 길을 찾았다.
비록 5공 및 광주사태 핵심인사처리 문제는 미제로 남겼으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인 전씨의 국회 증언 문제를 합의함으로써 이제 정치권이 과거의 문제로부터 헤어날수 있는 계기를 찾게됐다.
이러한 과거청산과 함께 미래정치를 향한 큰 디딤돌도 놓았다.
중진회의가 합의한 지자제의 실시 일정과 정치자금법은 우리정치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기부법·국가보안법 등 시국법안은 여야 관점차이로 끝내 타협을 이루어 내지 못했다.
다만 우리사회에 만연돼 가는 폭력에 대해서는 여야가 모두 위기의식을 느껴 화염병처벌법은 처리가 됐다.
중진회의가 이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4당이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현안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이뤄진 것이다.
지자제문제는 민정당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전씨 증언문제는 야3당의 적극적인 양보로 타협이 됐듯이 사안에 따라 양보와 타협에 인색치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이번 회의 과정을 통해 4당 공조체제의 새로운 양상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년 동안 거의 고정됐던 1여3야 구조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화염병 처벌법에서는 민정·공화대 평민·민주로, 5공 핵심인사 처리에서는 평민대 나머지3당으로 합종연형이 비교적 다양해졌다.

<정치자금 번복 소동>
따라서 앞으로 크게는 4당 공조체제라는 이름으로 큰 테두리에서 정치권이 결속을 해나가면서 그 안에서 사안에 따라 각기 다른 당과 서로 제휴해나가는 정치가 전개될 소지가 높아졌다.
이 같은 형태는 현재 정가에서 자주 부상되고 있는 내각제추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전체적인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으나 참여한 중진들이 전권을 위임받지 못해 중요사안마다 외부의 눈치를 보았던 점등에 대해서는 지척이 많았다.
특히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비공식적인 절차를 원용함으로써 국회 등 공식기구가 소외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때문에 중진회의과정에서 전권위임 여부를 놓고「중진」아닌「경진」이란 가시 돋친 농담이 서로 오가기도 했다.
정치자금 문제는 4당 사무총장이 합의했다가 청와대 회의 후 하루만에 뒤집혀 이종찬 민정당 사무총장의 체면이 깎이기도 했다. 민정당의 5인 대표 중 유학성 의원은 4성 장군 출신답게 광주문제에 군 입장을 대변했고 좌경문제 등에서 고성으로 강경 발언을 하는 등 강경파 소리를 대변했다.
○…지난 l6일 첫모임을 시작, 26일의 10차 회의를 끝으로 사실상 종결된 여야 중진회의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2∼7시간에 이르는 마라톤회의로 진행됐고 회의중반부터는 자주 도시락이 배달되기도 했다.
회의의 중대성과 이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들이다.
회의 초반만 해도『14인이 모여 무슨 결론을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 당초 4당이 결정한 합의제에 의한 사안별 일괄타결방식은 그런 대로 성과를 거둔 셈이 됐다.
회의를 교착상태에 빠뜨리는 암초는 미결사항을 남겨둔 채 다음 의제로 신속히 넘어간 점이나 각 당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린 주요현안에 대해서는 당별대책회의를 수시로 열어 절충한 것 등은 차라리 회의의 효율성을 높인 측면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강하다.

<도시락 먹으며 회의>
민정당의 경우「중진회의대표」임무를 맡은 김윤환 총무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부인할 수 없겠으나 사안별로 벽에 부닥칠 때마다 박준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수시로 대책회의를 갖고 숙의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되었고 지자제와 광주문제처리는 청와대회의(23일방)를 거쳐 당 방침을 확정하기도 했다.
평민당 역시 김원기 총무가 예상대로 협상주도권을 쥐고 현장지휘를 했으나 핵심사안은 김대중 총재가 대표들을 불러 집중토의를 거친 뒤 결정, 회의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최형우 총무가 전면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총론」을 맡고, 황병태 정책위의장이 구체적인 논리를 제공하는「각론」을 맡았다는 평이 나오고 있으나 김영삼 총재와 수시로 협의, 처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은 김종필 총재가 신도시건설문제를 제외하고는 별「간섭」을 하지 않아 대표들의 전권부여가 가장 확실하게 보였던 셈이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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