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그들만의 교육정책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쟁력 뒤에는 하루가 멀다고 뒤바뀌는 교육정책의 역효과가 큰 기여를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강냉이가 튀겨져 나올 때처럼 "뻥이오" 하는 외마디 외침과 동시에 터져나오곤 하는 숱한 교육정책들 때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순발력이 향상됐고, 시도 때도 없이 한판 뒤집기식 교육개혁 덕분에 우리 학생들의 낯선 상황 대처 능력이 세계 최고에 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각종 교육 혁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장승진제도를 '교장공모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며, 외국어고등학교를 한판 뒤집기로 눌러버릴 공영형 혁신학교를 서둘러 추진하는 정책당국에 많은 사람이 당혹감을 표출하고 있다.

씨름판의 샅바 싸움처럼 벌어지고 있는 교육혁신위원회와 교육부, 그리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기(氣) 싸움을 지켜보며 과연 무엇을 위한 정책이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묻게 된다.

작금의, 상식을 뛰어넘는 교육정책과 관련해 사회 일각에서는 정치적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내신 위주의 2008학년도 대학입시는 참여정부가 추진한 교육정책의 최대 승부수가 되기 때문에 내신과 관련해 걸림돌이 되고 있는 외국어고등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영형 혁신학교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해석이다. 말이 2008학년도이지 새로운 대학입시제도가 시작되는 시점이 2007년 말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있기에 이를 추진하기 위한 집권 여당의 조급함이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혹여 그런 정치적 꼼수가 깔려 있다면 학교 현장의 대다수 교직자들과 학생.학부모들의 선택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불만스러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이 지방선거 패배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겠으나 지금처럼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운 교육정책이 내년도 대선 패배에 일등공신(?)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약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 취지를 벗어나 손을 보려 한다면, 종교교육의 설립 취지를 내걸고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종단학교들의 항변은 어떻게 생각하며, 전교생의 30%까지 한국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되는 송도국제학교 설립과는 달리 자국인들의 외국어고등학교 운영을 제한하는 양면적인 교육정책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요자 중심의 교육정책을 외치던 교육부가 끊임없이 교육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일관성 없는 정책엔 또 어떤 설명을 내놓을 것인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려는 공영형 혁신학교의 참뜻을 비판하거나 왜곡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교육개혁이나 정책이 일관성을 지녀 학교현장을 안정시키고 교사들로 하여금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하며, 학생들이 신명 나는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는 데 정책 개발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정부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들의 능력과 형편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하고, 능력은 있으되 형편이 미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는 정책을 펴면 된다. 취약 계층의 학생들을 지원함은 옳은 일이지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자비를 들여 질 높은 교육을 추구하려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제한하는 일은 옳지 않아 보인다.

봄이 오면 씨앗을 뿌리고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를 모를 리 없건마는 지금 정책당국은 추수해야 할 시점에 씨를 뿌리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참여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오던 각종 교육정책들을 마무리할 시점이지 계속해서 충격적인 교육정책을 쏟아낼 때가 아니다. 부디 파종기와 추수기를 혼동하는 우(憂)를 범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성삼 건국대 사범대 교수. 건대부속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