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자 땅, 학교서 비싸게 사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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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대학은 2월 교비 29억원을 대학발전위원회에 송금했다. 91년 학교를 세울 때 설립자 J씨가 대신 낸 공사비를 갚는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이사회에 제출된 공사비 지급합의서.대납영수증 등은 모두 올 1월 위조한 것이었다. 빼돌린 돈은 학교법인 산하 다른 학교의 확장에 사용됐다.

감사원이 밝힌 사학들의 비리 내용이다. 1월부터 124개 학교에 대한 사학비리 특감을 한 감사원은 22일 비리가 있는 22개 학교의 관련자 48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 이창환 사회복지감사국장은 "감사 대상 학교 중 30여 곳에서는 전혀 지적사항이 없는 등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교육당국에서 수사 의뢰된 사람도 없었다.

◆ 학교 돈 빼돌리기=학교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적으로 사용한 학교들이 다수 적발됐다. C대학 설립자 이모씨는 학교법인 산하 5개 학교에서 65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사용됐다. 이 중 4억원은 이씨 개인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공사를 주고 리베이트를 받은 경우도 많았다. 2002년부터 지방 캠퍼스를 신축해 온 D대학은 설립자의 부인과 매제 등이 주주인 건설사에 공사를 맡겼다. 대학 측이 지급한 공사비 366억원 중에는 하지도 않은 부지 조성과 터파기 공사비 명목으로 65억원이 포함돼 있었다. E중학교 이사장과 행정실장은 학교를 이전하면서 부지 조성 공사를 맡긴 시공사로부터 1억원과 1억3500만원을 받았다. 행정실장은 이사장의 조카였다.

◆ 학교 통해 재산 불리기=학교법인 F학원은 2004년 고등학교를 짓기 위해 H물산으로부터 경기도 소재 임야 2만 평을 94억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이 부지는 개발제한구역이어서 학교설립 승인이 나지 않는 곳이었다. 더구나 땅값은 주변 임야에 비해 15배나 비싸게 평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H물산은 재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였다. 학교 돈을 직접 빼돌린 것은 아니지만 설립자 가족이 가진 쓸모없는 땅을 학교가 비싸게 사준 것이다.

서울의 H고는 운동장 부지 2000평을 지방의 I고가 소유한 임야와 맞바꿨다. 운동장 가치는 42억원, 임야 가격은 3억원이었다. 감사원은 두 학교 재단 사이에 이면계약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H고 관계자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 고질적인 학사 비리=편입학과 교직원 채용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학교들도 적발됐다. 지방의 J예고 입학상담실장 최모씨는 2004년 학부모로부터 2000만원을 받고 학생을 합격시켜 준 것이 적발됐다. K대는 이사장의 친인척을 교직원으로 변칙 채용했고, L대는 편입학 요건이 안 되는 법인 임원 자녀를 특례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또 9개 학교에서 회계담당 직원들의 교비 횡령 사실이 적발됐다.

◆ 사학들의 반발=감사원의 발표에 대해 사학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처음부터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학들을 옥죄기 위한 감사라는 지적이다. 개정 사학법 불복종 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시점에 발표를 강행한 것도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학법인연합회 송형식 사무국장은 "감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발표한 것은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조전혁(인천대) 교수는 "사학에 비리가 있다는 것은 이를 감시할 교육당국이 책임을 방기한 증거"라며 "이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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