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는 잘못된 정책"이라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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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교육부총리가 2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오고 있다. 강정현 기자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연일 '외국어고 때리기'에 나선 가운데 김 부총리의 딸 문제가 불거졌다.

딸이 외고를 졸업하고 어문계열이 아닌 경영학과에 진학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김 부총리는 외고 졸업생들이 어문계열로 진학하지 않는다며 '외고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교육부의 외고 규제 졸속'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상당수가 김진표 부총리의 '이중성'을 꼬집는 것이다. "김 부총리가 딸을 외고에 보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비판하느냐" "이 정부가 외면받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자기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국민과 개혁을 위한 거라며 헛소리나 하는 이중성 때문입니다"는 내용들이다.

김 부총리 딸은 서울 강남구 D중학교를 거쳐 1994년 서울 D외고 불어과에 입학했다. 97년 대학 입학 때는 어문학 계열이 아닌 서울 모 대학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D외고 관계자는 "당시엔 비교 내신(수능 점수에 맞춰 내신 성적을 주는 것)이 폐지돼 외고에 있는 것이 불리했는데도 부총리 딸은 외고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딸은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컨설팅사에 근무하다가 현재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MBA)에 재학 중이다. 최근엔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MBA 학생 대표로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영어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김 부총리가 19일 공영형 혁신학교 계획을 발표하며, 외고를 깎아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딸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게다가 김 부총리는 2003년 경제부총리 재직 중엔 "강남 집값 문제 해결을 위해 외고 등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강북에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외고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1일 한국방송통신대에서 화상으로 실시한 학부모 간담회에서 "당초 외고를 만든 목적은 어문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인데도 졸업생의 31%만 어문계열로 가고 이공계로 가는 학생이 12%"라고 말했다. "외고가 설립 목적을 위반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또 22일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고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김 부총리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딸은 설립목적 위반 학생이 된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박유희 이사장은 "과거 외고 학부모였다가 이제는 외고를 공격하는 김 부총리의 모습에서 이중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과연 부총리의 딸이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냐는 것.

교육부 관계자는 "부모의 입장과 공직자의 입장은 다르다"며 "공직자는 잘못된 입시 틀을 고쳐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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