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적 자세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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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14인 중진회의가 이른바 광주관련 핵심인사 처리문제를 다루는 자세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 동안 반 폭력입법·합수부의 해체문제 등과 전 대통령의 증언문제까지 대국적으로 잘 절충해낸 중진회의가 막상 핵심인사 처리문제에 들어가자 고질적인 각 정당의 체질이 다시 본색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광주문제에 대해서는 그 동안 청문회를 비롯한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어렵게 처리방안의 대강에 정치권이 의견을 접근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국회에서 보상법을 만들고 영령을 기리는 기념시설을 조성하는 일과 정부의 사과표명 및 전 대통령의 증언 등에 거의 합의했거나 합의가 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오직 핵심인사 처리문제가 걸려있는 셈인데 이 문제 하나로 기왕의 합의마저 위태롭게 하고 다시 광주 문제의 처리를 부지하세월로 만드는 것은 지극히 온당치 못하다.
말하자면 오늘날 정치권은 광주문제를 특정인이 공직을 사퇴하면 해결되고 사퇴 안 하면 해결이 안 되는 것으로 몰고 있는데 이런 논리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차원이나 정신에 과연 부합될는지 의문이다.
특정인의 거취를 둘러싼 민정·평민당 간의 공방의 논리도 어색하고 당략적 인상을 주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민정당이 정호용 의원의 책임문제에 대해 평민당 소속 정웅 의원과 연계시키는 것이나 평민당 쪽에서『수구세력의 핵심이니까 물러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순수하게 책임소재를 규명하자는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
또 책임 소재를 가리자면 가장 큰 열쇠를 쥐고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의 증언부터 듣고 결론을 내려야 할텐데도 공직사퇴를 않는다면 증언도 안 듣겠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양당이 보이고 있는 당략적 자세는 지난번 5·18 평화시위에서 보인 광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민주화에 참뜻이 있는 광주정신의 구현과도 맞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진상과 책임 소재의 규명 및 그에 따른 문책·보상 등이 현실적 처리방안으로 이뤄져야 마땅하지만 이런 일들은 정치적 계산에 의해 가름될 성질의 것이 아닐 것이다.
광주문제는 민주화와 정의를 의해 희생된 그 숭고한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이라 할 것이다. 정치권이 이처럼 좀더 대국적으로, 한 차원 높게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가 아쉽다. 허구한날 묵은 아픈 상처를 건드리기만 하고 마무리를 못하는 정치권의 아옹다옹은 이제 정말 신물이 날 지경이다.
각 정당은 좀더 순수하고 새로운 시야로 이 문제에 임해 중진회의에서 빠른 ??결을 보기 바란다. 진지하게 새로 절충해보고 그래도 시간이 모자란다면 이 문제는 일단 뒤로 돌려 얘기를 계속하면서 법률개폐 등 중진회의의 결론을 기다리고있는 다른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나가기 바란다.
오늘의 시국상황은 정치권의 빠른 행보를 요구하고 있다. 모처럼 양내정치가 시국을 주도할 기회를 맞은 만큼 이 기회를 살려야 하고, 그런 점에서 중진회의의 성공적 운영과 영수회담의 빠른 실현을 보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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