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찾은 고향 -오세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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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고향을 찾았다. 몇 년 만에 모처럼 가 본 고향인지라 어렸을때부터 『이모, 이모』하며 따랐던 어머니 친구분들의 근황이 궁금해 그분들을 찾아 나섰다.
어렸을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품앗이로 긴 밭을 가꾸시던 「정이 이모」는 여러 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주름투성이 할머니가 됐다. 신경통이 생겨 들에도 못나간다는 그분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면서 옆모습을 보니 돌아 가신 어머니와 어쩜 그리 닯았는지‥.
집에 인기척이 없는 듯 하면 며느리 흉을 이것저것 해대신다. 조석으로 따뜻한 찌개나 국도 없고, 그저 뭐든지 새로 사는 것 밖에 모른다느니, 아이들을 너무 버릇없게 키운다며 걱정이 태산 같다.
그럴 때마다 젊은 사람들이 농사도 잘 짓고 살림살이도 잘하니 아무 걱정 마시고 건강주의하며 오래 사시라고 하면 당장 좋으신 듯 함박 웃음을 지으신다.
이집, 저집 들러 마지막으로 외딴 곳에 사시는「영순이 이모」를 찾아갔다.
방문을 열도록 인기척이 없어 빈집인가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영순이 이모」는 내 목소리를 기억해내고 이내 훌쩍훌쩍 우신다.
어렵게 사는 그분은 『자식들이 객지에 나가 제각기 벌어먹고 살면서도 에미 들여다 보는 애가 없다』며 눈물 젖은 손으로 내 손을 붙드신다.
지난달에 중풍이 들어 읍에 나가 침을 맞으면 일어날 것 같은데도 데리고 가는 사람도, 돈 장만도 어렵다며 한숨을 쉬신다.
한사코 마다하는 「영순이 이모」의 손에 집에 갈 차비만 남기고 2만원을 쥐어 주고 나와 산등성이를 넘어 어머니 산소에 절을 올리고 나니 마치 살아계신 어머니를 뵈온 듯 마음이 뿌듯해 왔다. <충북 청주시 북문로2가 135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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