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우월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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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어머니 압구정동이 부자동네예요?』중학교 2학년인 아들 현이가 불쑥 물었다.
『집값이 비싼 동네지. 그런데 왜 그런건 묻지.』 현이의 얘기인즉 이러했다.
학교에서 간 수안보온천에 압구정동에 있다는 모중학생들도 수학여행을 왔다는 것이다. 서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다가 개봉동에서 왔다고 하니 『서울에 개봉동이란 동네가 있었나. 가난한 동네인 모양이지』하면서 아주 업신여기는 투로 얘기하더란다. 직접 당한 친구들이 분해서 선생님에게 얘기했고 친구들이 모두 자존심을 상해 좀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강남과 강북의 지역 격차는 어제 오늘 있었던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아들의 입에서 들으며 마음 상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기분 또한 언짢아졌다.
물질적으로 좀더 가졌다 해서 덜 가진 자를 우습게 보는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이 두려워진다. 그들은 자라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게 될 주역들인데 벌써 의식의 차이, 사고의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차이란 다양함이요 개성이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차이는 화합을 방해할 뿐이다.
『넌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수십억씩 가진 사람보다 가난한 것 아니예요.』
『그럼 넌 돈많은 사람이 부러워?』
『없는 것보다 좋지않겠어요.』
말문이 막힌다. 나는 한번 더 아들에게 물었다. 『그렴 현이는 무엇을 제일 가치있다고 생각해.』 『에이 어머니는 꼭 도덕선생님 같네.』
현이는 묘하게 내 질문을 피하며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내게 기분이 좀 나빴던 일을 얘기하고나니 현이의 기분은 풀린 모양이지만 대신 나는 무언가 쑥 내려가지않고 걸린듯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아, 정말 요즘은 가슴답답한게 한두가지인가.
답답하여 베란다로 나오니 뿌연 하늘아래 그래도 신록은 푸르다. <서울구로구시흥 1 동산173의8 성지아파트 1동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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