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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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때 만시지탄(만시지탄)이라는 말을 신문 사설에 쓰지 못하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른 검열이 이루어지던 비상계엄시대의 일이다. 『…때늦였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뜻으로 쓴 말인데 검열관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탄한다는 뜻의 「탄」 자가 필경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대신 검열관은 『시의적절 했다』는 표현으로 고치라는 주문을 했다.
어떤 의견을 거부하는 것만도 불쾌한데, 다른 의견을 첨가하는 행위는 더 불쾌하다.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기만이다. 마찰은 불가피했다.
이른바 제도언론은 신문의 문투까지도 굴절시켰다. 『…인지도모른다』 거나, 『…일 것도 같다』는 소극적 표현들이 바로 그런 예다. 물론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대목에서는 무책임한 의견이 될 수도 있다.
곤혹스러운 것은 중요한 기사를 아예 죽여버리는 것보다 그런 요령을 부려서라도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판단을 해야 할때다. 한 시절 독자들은 1면 머릿기사보다 내지 구석의 1단짜리 기사에서 더 많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독재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가 아니다.
언젠가 일본의 어느 작가가 쓴 글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언론들은 엄격한 검열 아래서 월요일이면 모든 직장의 출근율이 평소의 절반도 안된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이 기사의 뒤에 숨은 뜻은 일요일이면 생필품을 사러 동분서주, 피로에 지쳐 있다는 은유를 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리 없다.
요즘 중국의 언론인 1천여명이 언론의 검열중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중공당에 제출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그 사실은 중국의 신화사통신과 인민일보에도 보도되었다. 인민일보는 당기관지이며, 신화사통신은 관영이다. 바로 권력의 턱 밑에서 권력의 핵심을 찌른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나 독재국가에서 권력자가 제일 먼저 손을 대는 곳은 언론이다. 언론을 장악하지않고는 아무것도 장악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상 적어도 이것만은 예의가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빵 한조각에서부터 하다 못해 일기예보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 민주주의의 요구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절규하는 것은 마치 수목이 물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생존의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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